일본 호텔·항공료 '억'소리나게 비싸진 이유③에서 계속 일본 정부는 지난 6월 외국인 관광객을 최대한 많이 끌어들이고 보는 양 중심의 관광전략을 관광객 1인당 소비 규모를 늘리는 질 중심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양보다 질을 중시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전략에 여론도 우호적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오버 투어리즘(관광공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외국인 관광객 때문에 지역 주민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애를 먹는 교토, 가마쿠라 같이 오버 투어리즘이 심각한 지역도 있다.
일본의 럭셔리 리조트 체인인 호시노 리조트의 호시노 요시하루 사장은 "오버 투어리즘은 관광지의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는 심각한 과제"라며 "방치하면 관광 만족도가 저하하고 장기적으로 집객력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 목표로 내세운 5조엔은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0.8%다. '잃어버린 30년' 장기침체에 신음하는 일본에 5조엔의 부가가치는 결코 적은 게 아니다. 하지만 '겨우 0.8% 때문에 이해관계자가 아닌 사람들까지 피해를 봐야 하느냐'라는 반감을 가진 일본인들도 적지 않다.
엔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커진 일본인들의 소외감이 이런 정서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에서는 최근 '서비스 분야의 젠트리피케이션(원주민의 상권 내몰림)'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일본으로 몰려드는 외국인들이 물가를 올려 놓으면서 내국인들은 사고 싶은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눈이 휘둥그레해지는 가격의 숙박시설과 체험형 관광 프로그램을 외국인들이 '가성비가 훌륭하다'며 즐기는 동안 일본인들은 낮은 가격대의 제품과 서비스를 소비하는 이중가격이 굳어지고 있다. 하나의 나라에 2개의 경제권이 존재하는 셈이다.
오버 투어리즘 대책은 관광 공해를 해소하는 동시에 일본인의 소외감까지 어루만져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정부가 오버 투어리즘(관광 공해)으로 몸살을 앓는 인기 관광지 20여 곳을 선정해 대책 마련에 필요한 비용의 3분의 2를 8000만엔(약 7억원) 한도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혼잡한 정도에 따라 입장료와 교통요금을 조절하는 탄력요금제와 관광객을 덜 혼잡한 시간대로 분산하는 효과가 기대되는 입장객 수 제한 제도 등을 도입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된다.
일부에서는 동남아 국가들이 운영하는 이중가격제를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외국인에게는 더 비싼 요금을 받아 지역 인프라를 유지하고, 수요를 억제하는 한편, 일본인에게는 저렴한 가격의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네팔과 캄보디아는 자국민에게 무료인 광장과 유적지의 입장료를 외국인에게는 받고 있다. 태국도 상당수 시설에 외국인 요금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수족관은 주민등록증에 해당하는 증명서를 보여주면 자국민은 할인을 받는 방식의 이중가격제를 운영한다.
오랫동안 일본 관광정책의 교과서는 프랑스였다. 자국민이 바캉스를 즐기기 위해 만들어 놓은 관광 인프라의 토대 위에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방식이었다. 일본의 물가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었을 때 '서비스 젠트리피케이션'이나 이중가격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앞으로 일본의 관광전략이 외국인에 의존해 성장하는 신흥 개도국의 마케팅을 많이 참고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력난과 오버 투어리즘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관광업 종사자를 늘리는 대신 돈 잘 쓰는 관광객을 더욱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방향으로 관광 전략을 바꾸는 것. 이것이 일본의 호텔 숙박비와 항공료가 비싸지는 원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코로나19 이전까지 일본을 가장 많이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은 중국인이었다. 현재 중국인 관광객의 숫자는 여전히 코로나19 이전의 40%에 머물러 있다. 중국인 관광객까지 가세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부담스러운 일본의 호텔·항공료는 더 오를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분석이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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