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내 한 기업에 근무하던 A씨는 3나노 반도체 생산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넘겨졌지만 법원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다른 기업으로부터 자율주행 라이다 기술을 유출한 B씨 또한 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2. 피고인 리우씨는 미국 D화학회사에 근무하던 전 직원을 자신의 회사 컨설턴트로 고용하고, 그를 통해 공정 기술을 훔친 뒤 거액을 받고 중국 기업 P사에 판매했다. 미국 법원은 리우씨에 180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하고 2780만달러를 몰수하도록 했다.
1번과 2번 사례는 산업기술유출 범죄에 대한 한국과 미국 법원의 극명히 다른 판단과 처벌 기준을 보여준다. 이 같은 국내 법원의 산업기술 범죄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행사가 22일 열렸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국가정보원이 이날 연 ‘산업보안 컨퍼런스’에서 임형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사법원수원 35기)는 한국과 미국과 기술유출 피해액 산정의 차이점과 양형사례를 분석해 발표했다. 임 변호사는 서울대 공대를 나와 다수 국가핵심기술 관련 사건을 맡은 전문가다.
임 변호사는 국내 법원이 ‘수사를 통해 범죄행위가 사전에 적발돼 영업비밀이 유출되지 않은 점’을 유리한 양형 사유로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대법원은 2019년 이를 ‘영업비밀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회수돼 실제 사용되지 않았다’며 피고인에게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국내 법원은 또 △영업비밀이 외부로 유출됐지만 실제로 사용되지 않은 경우 △유출됐지만 피해자 손해가 현실화되지 않은 경우도 유리한 양형 사유로 삼았다.
지난해 대법원이 ‘(기술이 유출됐지만) 이로 인해 입은 손실의 구체적인 규모가 확인되지 않는 점’을 양형에 참작해 피고인에게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게 대표적이다.
심지어 국내 법원은 ‘영업비밀 유출자가 영업비밀 개발에 기여한 경우’에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사실상 ‘기술을 개발했으니 기술을 유출해도 될 만한 사유가 있다’는 판단을 한 셈이다.
임 변호사는 이에 대해 “영업비밀 보유자는 피고가 아니라 피해회사”라며 “유출자가 기술개발에 기여했다는 점과 범죄에 대한 처벌 경감 사이에 논리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다르다. 미국은 피해액에 따라 기술유출을 최고 36등급의 범죄로 상향할 수 있고, 이 경우 188개월(15년 8개월)에서 최대 405개월(33년 9개월)의 징역형을 내릴 수 있다.
또한 실제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연구개발 비용을 피해액으로 산정해 형벌을 부과하고 있다. 중국 경제스파이인 Xu가 GE사의 엔진 기술을 탈취하려 한 사건을 다룬 ‘US v. Xu’ 판결이 대표적이다.
기술탈취가 미수에 그쳤음에도 미국 법원은 “피고인이 피해 회사에 실제 끼치고자 의도한 피해액을 본 사건의 피해액으로 계산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Xu에게 240개월(20년)의 징역을 선고했다.
임 변호사는 한국의 기술유출 범죄 양형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양형에서 처벌 감경요소인 ‘실제 피해가 경미한 경우’ 조항을 삭제하고 손실산정에 기술개발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안덕근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날로 교묘해지고 다양해지는 기술유출 수법에 대해 적극 대처하기 위해 법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김규현 국정원장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기술보호 활동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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