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사상 최대 규모의 법인세 감면을 단행하기로 한 것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유럽연합(EU) 최저 수준인 0%대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란 어두운 전망 때문이다. 영국 못지않게 경제가 어려운 이웃 독일이 최근 연간 10조원의 법인세를 감면하고, 기업 전기요금을 97% 감면하는 등 전방위 지원안을 내놓은 것도 자극이 됐다.
내년 총선거를 앞두고 노동당에 참패할 위기에 몰린 집권 보수당 정부가 경제 살리기에 사활을 걸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 세금뿐만 아니라 국민보험(영국 사회보험·NIC) 요율도 현행보다 2%포인트 낮춰 10%로 인하한다. 개인의 부담을 줄여 소비지출 증가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재무부는 “연봉이 3만5000파운드(약 5680만원)인 사람이 연간 450파운드(약 74만원)가량의 보험료를 덜 낸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시간당 10.42파운드인 최저임금은 내년 4월부터 11.44파운드로 인상된다. 저소득층 또는 실직 가구에 지급되는 유니버설크레디트 수당을 6.7%가량 인상하는 대신 6개월 동안 구직에 참여하지 않으면 지급을 중단한다. 현행 40%인 상속세율을 약 절반으로 낮추는 방안은 예상과 달리 포함되지 않았다.
영국이 전방위 감세안을 마련한 것은 올해 세율이 인상되면서 경기가 침체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년 전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예산을 대폭 증액하면서 당시 19%이던 법인세의 명목 최고세율을 올해부터 25%로 올리고, 개인 소득세 면세점을 2026년까지 동결하는 식으로 과세 대상자와 세액을 늘렸다.
영국 정부는 감세로 부족해지는 재원은 불필요한 정부 지출 증가를 최소화하고, 국채를 발행해 마련하기로 했다. 10년간 공공지출 증가율은 연 1% 이하로 제한하기로 했다. 공무원은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줄인다. 제러미 헌트 재무장관은 “영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주요 7개국(G7) 가운데 독일을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예산안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은 여전하다. 영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년 내 최저치인 전년 동월 대비 4.6%까지 내려왔으나 영국 중앙은행 목표치(연간 2%)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상황이다.
이현일/김동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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