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1월 29일 16:09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SK그룹이 11번가 재무적투자자(FI)들이 보유한 지분을 사갈 권리를 행사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2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11번가 최대주주(지분율 80.26%)인 SK스퀘어는 내달 초까지 FI가 보유한 11번가 지분을 살 수 있는 권리(콜옵션)가 있지만 이를 행사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날 오전 이사회를 열어 콜옵션 포기에 대한 안건을 통과시켰다.
콜옵션을 행사했을 경우엔 원금 5000억원에 내부수익률(IRR) 연 최대 8% 이자를 붙여 돌려줘야 했다. FI는 2018년 5000억원을 투입해 지분 18.18%를 확보한 H&Q코리아와 이니어스프라이빗에쿼티(PE)다. 올해 9월까지 기업공개(IPO)를 통한 투자회수를 약속했지만 IPO에 이어 매각까지 불발되면서 옵션이 발동했다.
콜옵션 행사 포기 논리는 '배임'이다. SK스퀘어는 콜옵션 행사가 SK스퀘어 주주에 대한 배임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떨어진 기업가치 때문이다. 5년 전 투자받을 당시 회사 기업가치는 2조7500억원이었지만 SK스퀘어는 현재 1조3000억원까지 떨어졌다. 상반기 기준 SK스퀘어가 보유한 지분의 장부가는 1조494억원이었다. 이사회는 5년 전 가치로 되사오는 건 회사에 손해라는 반발 여론을 의식했다.
그룹 임원 인사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수천억원이 지출되는 콜옵션 행사에 총대를 멜 인사가 없다는 점도 한몫했다. 여러 사정 탓에 일단은 FI에게 선택을 맡기고 다시 밸류업 기회를 엿보자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엑시트(투자 회수) 공은 FI로 넘어가게 됐다. FI들은 내달 중순부터 SK스퀘어가 보유한 지분까지 묶어 동반매도할 수 있는 권리(드래그얼롱)을 갖고 있다. 사실상의 강제매각인 셈이다. 다만 드래그얼롱을 행사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원하는 가격에 매각이 성사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11번가는 1년간 매각이 추진돼왔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SK의 콜옵션 행사 포기가 현실화하면서 투자업계에도 충격에 빠졌다. 드래그얼롱은 사실상 경영권을 포기하겠단 의미를 내포했단 점에서 자본시장에서 최후의 시나리오로 받아들여져 왔다. SK그룹은 11번가 외에도 콜옵션과 드래그얼롱이 포함된 유사한 구조로 다수 계열사의 투자유치를 해왔다. 투자한 PEF 운용사와 이들이 조성한 펀드에 자금을 넣은 연기금 공제회 금융사 등 출자자(LP)이 이번 사안을 특히 예의주시하는 이유다.
이번 사례를 계기로 SK그룹 전반이 평판리스크에 직면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호황기 FI로부터 투자를 받으며 제시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자 무책임하게 발을 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 등 공적자금이 대규모로 들어가있는 만큼 자본시장에 신의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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