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처럼 서울에 있는 작은 하천들의 물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도로 아래에 있다. 1960~1970년대 도로로 복개되기 전만 해도 서울 시내에 하천이 많았다. 내사산에서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가 모여 청계천을 이뤘다.
청계천이 사대문 안에 흐르는 하천이라면 사대문 밖을 대표하는 하천은 만초천이다. 눈으로는 만초천의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지명에는 남아있다. 인왕산과 안산 사이인 무악에서 발원한 만초천은 서대문 영천시장 앞에서 석교(石橋)라는 돌다리 밑을 지나게 된다. 지금도 이 일대는 ‘석교’라는 지명을 사용한다. 석교 다리의 윗동네라 하여 교북동(橋北洞), 아랫동네라 하여 교남동(橋南洞)이다. 그 주변의 평평한 동네가 평동(平洞)이다.
그 동네에 찬 얼음물이 늘 솟아나는 샘이 있다고 하여 냉천동(冷泉洞)이며, 그 샘이 영험해 먹는 사람마다 병이 나으니 영천(靈泉)이라고 부른다. 이 물길이 경기감영 앞을 흐른다. 사대문 밖이니 경기도이고 서대문 밖에 경기감영이 있었다. 경기감영 앞의 다리라 하여 경교(京橋)다. 경교 다리 앞의 큰집, 경교장(京橋莊)이 있었다. 백범 김구가 해방 후에 살던 경교장은 강북삼성병원 안에 보존돼 있다.
경교를 지나는 만초천은 농협, 이화여고 앞을 흐른다. 그 물길 위에 있는 아파트가 1971년에 지은 서소문아파트다. 이 아파트가 휘어진 것은 휘어진 물길 위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특이한 점은 1층에 개구부를 둬 뒷골목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뒷길로 가면 1960년대 서울 길을 연상케 하는 낡은 건물이 많이 남아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아파트의 지목이 천(川)으로 돼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하천 점용료를 낸다. 이 아파트도 곧 재건축된다고 하니 한번 마음먹고 서소문아파트 개구부를 통해 서대문으로 통하는 뒷길 탐험을 시도할 일이다.
이 아파트 옥상에서 휘어진 각을 보면 인근 오진빌딩에서 선회해 서소문공원 앞으로 물길이 흐르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네 이름 또한 흥미롭다. 미근동(渼芹洞)이다. 미(渼)는 ‘물결무늬’란 뜻이며 근(芹)은 미나리를 의미한다. 말 그대로 ‘미나리가 물결치는 마을’이다. 만초천에 미나리가 많았어서 그렇다. 물이 많은 미나리 논을 ‘미나리꽝’이라고 하는데 이 지역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 이곳에선 미나리꽝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미나리가 물결치는 마을,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미나리의 상큼하고 향기로운 향이 마을을 감싸는 듯하다. 1층 상가에 즐비한 커피집에서 아메리카노를 한 잔 들고 미나리가 물결치는 동네를 한 바퀴 돌 일이다. 그 물길이 지금의 한국경제신문사 앞에서 선회해 큰 모래사장을 만들었고, 그곳에서 청파, 원효를 지나 한강으로 빠졌다.
여기 서소문공원 앞 넓은 모래사장이 조선 제일의 참수장이었다. 이곳에는 만초라는 넝쿨식물이 많이 자랐다. 이곳에서 태어난 우리나라 첫 영세자 이승훈이 고향 천의 이름을 호로 만들어 ‘만천 이승훈’이 된 것이다. 그는 왜 이곳에서 참수됐을까? 왜 이곳에 참수장이 생겼을까?
으스스한 이야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이 만초천에서 산다고 하니, 지금 복개된 어디쯤엔가 괴물이 살지도 모를 일이다. 괴물이 복개를 뚫고 나오기 전에 한번 이 지역을 찬찬히 둘러보는 건 어떨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