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속도로는 경기 고양시 일산~남양주시 퇴계원을 잇는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를 운영하는 업체로 2006년부터 고속도로 통행료 수납업무를 용역업체에 맡겨왔다. 이 과정에서 업무 매뉴얼과 교육 교재 등을 용역업체에 배포해 요금 수납원들이 따르도록 했다.
처음부터 총괄관리직을 제외한 모든 업무를 외주화했기 때문에 이 회사에는 원고들과 같거나 비슷한 업무 자체가 없다. 재판부는 “원고들과 서울고속도로의 4급 사무기술직은 채용 조건과 절차뿐 아니라 업무의 내용·권한·책임 등에서 차이가 상당하다”며 “원고들이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4급 사무기술직의 근로가치와 같거나 비슷하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최근 다른 불법 파견 사건에서도 이 같은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대전지법 공주지원은 지난 2월 고속도로 요금수납원 32명이 천안논산고속도로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들의 임금 차액 지급 청구를 기각했다. 4월 대법원으로부터 “원청에 직고용 책임이 있다”는 확정 판결을 받은 신대구부산고속도로 협력업체 근로자 124명 역시 임금 차액을 달라는 주장은 인정받지 못했다. 이들은 1·2심에서 임금 차액 청구가 기각되자 대법원에선 파견 여부를 두고만 다퉜다. 이 재판 역시 원고들과 비교할 만한 업무가 원청에 없다는 것이 중요한 판단 근거로 작용했다.
지금까지 임금채권 소멸시효(3년)를 적용해 손해배상을 요구하던 하청 근로자들이 이 판결을 참고해 불법행위 손해배상 소멸시효(10년)를 기준으로 임금 차액을 달라고 요구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여기에 원청에 동종·유사 업무가 없음에도 하청 근로자 주장대로 임금 차액이 결정된다면 기업의 부담은 더 커졌을 것이란 분석이다.
노동계에선 “동종·유사 업무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임금 차액을 한 푼도 못 받아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크기 때문에 임금 차액 산정을 두고는 치열한 법정 싸움이 계속될 전망이다. 하청 근로자들은 “비교 대상이 없다면 최소한 원청에서 가장 나쁜 조건으로 일하는 정직원이라도 비교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대형로펌 노동담당 변호사는 “원청에 비교할 업무가 없을 때 얼마의 임금 차액을 줘야 하는지가 불법 파견 분쟁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