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으로 기업이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명확한 ESG 공시 지침을 제공해야 한다. 금융위가 최소 1년 이상 ESG 공시 의무화를 연기했지만 해외법인이 많거나 협력업체가 다수인 경우 대기업조차 연결기준으로 ESG 데이터를 취합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공시항목도 명확히 제시하지 않은 채 공시 의무화 시점을 선언하듯이 접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가령, 금융위가 ESG 공시기준으로 고려하고 있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처럼 산업별 특성지표를 미국의 SASB를 준용하라는 막연한 제시에 머물지 말고, 국내 산업에 대한 면밀한 현황 분석을 토대로 적용 가능한 산업별 공시항목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둘째, 지속가능보고서를 통한 ESG의 자발적 공시와 사업보고서에 포함되는 의무공시는 공시 프로세스가 전혀 다를 수밖에 없고 달라야 한다. 2011년 도입한 국제회계기준(IFRS)이 아직도 적용 과정에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음을 반면교사 삼아, 실무적 검증을 위한 유예기간을 두고 시범사업을 해야 한다. 특히 해외 종속기업에 대한 연결공시와 스코프3(Scope 3)와 관련된 항목은 공시 난도가 높으므로, 시범사업에 따른 자율공시 후 유예기간을 거쳐 의무공시로 점차 전환해 나가야 한다.
셋째, 현재 ISSB 주장을 그대로 수용해 ESG 정보를 사업보고서에 공시하면 국내 기업은 공시 위반에 따른 법적 리스크가 발생하게 된다. 예를 들어, 스코프3의 탄소 배출량은 추정치기 때문에 추정 방법과 추정치에 대한 공시위반 리스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책당국은 ESG 공시 의무화에 따른 이런 법적 리스크를 기업에 전적으로 부담시켜서는 안 된다. 기업의 책임 완화를 위한 제도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
넷째, ESG 공시 의무화에서 인증제도에 대한 논의도 충분해야 한다. 정보는 공개하는 것만으로 유용한 것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ESG 공시 의무화가 유효하게 작동하려면 제3자의 검증·진단·인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회계 기업 KPMG에 따르면 전 세계 기업 중 4분의 3이 ESG 인증 준비가 돼 있지 않은데, 국내 상황도 덜하지 않다. 기업이 제3자로부터 인증받기 위해 ESG 정보의 추출 및 집계 과정을 문서화하고 관련 시스템을 구축·검증하는 것은 결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다섯째, 현재 ISSB 도입 논의가 공시라는 측면에서 금융감독당국이 주도하고 있지만, 기업만큼 ESG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ESG 공시는 금융이나 회계 또는 환경과 같은 특정 집단이 주도하기보다 기업의 ESG 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 산업정책당국이 기업 주도로 다양한 전문가와 투명한 논의 과정을 거쳐 제도화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IFRS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전면 도입해 상당한 도입 비용을 감당해야 했듯, ISSB 등 ESG 국제표준 공시기준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국내 기업은 해외 투자자들에게 저평가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ISSB를 선도적으로 의무 적용하기보다는 다른 국가가 어떤 방식으로 이를 도입하는지 상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ESG 비재무정보를 재무보고시스템과 일관된 기준으로 통합하는 것은 선언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