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국회 입법 과정에서도 이런 왜곡이 벌어지고 있다. 산업재해를 예방해야 한다는 본질을 벗어나 책임자 처벌이라는 수단을 입법 목적으로 둔갑시킨 중대재해처벌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산업 현장의 혼란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50인 미만 사업장의 80%는 준비 부족에 비상이 걸렸다. 기업 대표가 1인 다역을 하는 중소기업의 속성상 사고가 발생하면 대표는 구속되고, 그 즉시 기업은 문을 닫아야 하는 지경에 내몰린다.
경기침체로 고전하는 상황에서 안전보건 관리 체계 구축에 들어가는 비용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이런 와중에 로펌업계는 쇄도하는 중대재해 컨설팅 요청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기업들은 절박한 마음에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판례도 드문 만큼 부실한 자문일 수밖에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칼끝이 향하는 기업 대표의 위기감도 이와 비슷하다. 기업인인 동시에 예비 범죄자라는 굴레로 자기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선 기업가정신을 발휘하기 어렵다.
당장 내년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되는 중대재해법에 대해 기업들은 2년 이상 유예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계와 여야 정치권도 이를 둘러싼 공방이 첨예하다. 과연 유예가 능사일까. 재해 예방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기업인 처벌이라는 사후약방문에 초점이 맞춰진 중대재해법은 이참에 폐기하는 것이 옳다. 근로자의 안전이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도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원점부터 논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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