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2조원 규모의 상생금융 지원 대상을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 종노릇’ 발언 이후 시작된 상생금융 압박은 코로나19 사태와 고금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이자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은행들의 시뮬레이션 결과 자영업자·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지원만으로는 금융당국이 사실상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2조원을 채울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은행권이 상생금융 대상을 청년과 고령층 등 취약계층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배경이다.
일각에선 이자 감면 방식의 상생금융 지원 대상을 일반 가계로 넓히면 사상 최대치로 불어난 가계부채 문제가 악화할 것이란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그동안 상생금융이 소상공인·자영업자가 대상이어서 가계부채 증가세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설명해온 금융당국의 입장이 난처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은행들은 이처럼 일률적인 이자 감면 방식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고 대출 상품 간 급격한 자금 이동이 발생해 금융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이 2조원 규모를 맞추지 못하더라도 일률적인 원리금 감면은 검토하지 않는 이유다.
대신 은행들은 ‘연체 대출’ 이자 감면 위주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고금리로 이자 납부에 고통받는 자영업자·소상공인만 지원하기 위해서다. 다만 이럴 경우 은행별 지원 규모가 수백억원에 그쳐 금융당국이 요구해온 2조원과 간극이 크다.
문제는 이자 감면 방식의 상생금융 지원이 자영업자·소상공인을 넘어 일반 개인에게까지 확대되면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불리는 가계부채 문제가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6월 말 1747조4000억원에서 9월 말 1759조1000억원으로 3개월 새 11조7000억원(0.7%) 늘어나며 역대 최대 규모로 불어났다.
은행권의 지원 대상이 개인으로 확대되면 그동안 상생금융과 가계부채 억제 정책이 상충하지 않는다고 강조해온 금융당국이 앞뒤가 안 맞는 행보를 하게 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논란을 의식한 듯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17개 은행 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 “가계부채 관리와 취약계층 지원 사이에 어려운 문제가 있다”며 “코로나19 시기를 빚으로 버텨온 분들의 상환 부담을 덜어드리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은행의 고객 기반을 보호하는 길이기도 하고, 가계부채의 질적 개선을 위한 금융당국의 정책적 노력과도 맥락을 같이한다”고 했다.
정의진/최한종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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