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1월 29일 11:02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CJ ENM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인 티빙과 SK스퀘어의 웨이브가 전격 합병한다. 두 플랫폼 간 통합이 마무리되면 월간활성이용자수(MAU) 기준 1000만명에 육박한 국내 1위 OTT로 재탄생한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와 유통 플랫폼과 함께 빠르게 점유율을 늘리고 있는 쿠팡플레이에 맞서기 위한 CJ그룹과 SK그룹의 '승부수'로 풀이된다.
2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CJ ENM과 SK스퀘어는 자사의 OTT 서비스인 티빙과 웨이브를 합병하는 양해각서(MOU)를 내달 초 체결한다. CJ ENM이 합병 법인의 최대주주에 오르고 SK스퀘어가 2대 주주에 오르는 구조다. 양사는 실사에 돌입한 후 내년 초 본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현재 티빙의 최대주주는 CJ ENM(48.85%)이고, 웨이브의 최대주주는 SK스퀘어(40.5%)다.
티빙은 510만명의 월 이용자수(지난달 말 기준)를 보유한 국내 대표 OTT 플랫폼이다. 넷플릭스(1137만명)와 쿠팡플레이(527만명)에 이어 3위에 올라 있다. 4위인 웨이브(423만명)와 합병으로 단숨에 933만명에 달하는 이용자를 보유한 초대형 OTT로 재탄생하게 된다. 양사가 내걸었던 '넷플릭스 대항마'로서의 외형을 갖추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합병은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들의 자본력과 쿠팡플레이의 성장세 속에서 출혈 경쟁을 멈추고 대형화에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 속에서 극적으로 성사됐다. 1000만명에 육박한 활성 사용자수를 무기로 콘텐츠 제작사들과 협상에서 유리한 협상력을 발휘하고, 플랫폼 통합으로 줄인 비용을 킬러 콘텐츠 제작에 투입하는 선순환을 통해 업계 내 영향력을 확보하겠다는 승부수다.
향후 티빙의 주요 주주인 네이버 SLL중앙 KT스튜디오지니와 웨이브의 주요 주주인 지상파(SBS, MBC, KBS)와 등도 합병 법인의 주주로 남을 지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한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국내 대표 미디어 그룹인 CJ의 콘텐츠들에 더해 지상파 3사 및 종편, 통신사 두 곳의 콘텐츠가 한 OTT를 통해 유통되는 초대형 토종 플랫폼이 탄생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3년 만에 극적 통합 성사..."출혈경쟁 멈추고 글로벌 진출"
올해 8월 자타공인 '콘텐츠 왕국'을 내건 CJ ENM 내부에선 비상이 걸렸다. 티빙이 창사 이후 처음으로 쿠팡플레이에 국내 OTT 월간활성이용자수(MAU) 1위 자리를 내주면서다. 쿠팡이 월 구독료 4900원을 지불한 멤버십 회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쿠팡플레이는 모회사의 전폭 지원에 힘입어 국내 OTT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었다.쿠팡에 대항하기 위해선 콘텐츠 투자에 힘을 실어야했지만 문제는 비어가는 '곳간'이었다. 티빙의 손실 규모는 2020년 61억원에서 지난해 1192억원까지 대폭 늘었다. 올해 3분기에도 1177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기록하면서 모회사인 CJ ENM의 재무제표에도 영향을 미쳤다. 올해 3분기까지 797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웨이브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내년까지 상장을 투자자들에 약속했지만 누적된 적자 속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 양사 모두 막대한 투자비가 소요되는 오리지널 콘텐츠 대신 철 지난 저렴한 콘텐츠를 들여와 구색 맞추기에 급급했던 상황이었다.
1000만 사용자 '공룡 플랫폼' 탄생...합병 시너지 극대화
결국 티빙과 웨이브는 막대한 출혈경쟁을 멈추고 콘텐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합병 결단을 내렸다. 두 회사의 합병 논의는 2020년부터 이어졌지만 주도권을 두고 수 년간 평행선을 보였다. 이번엔 모회사인 CJ ENM과 SK스퀘어 뿐 아니라 두 그룹 차원의 논의로 확장됐다. 더 이상 지체하다간 토종 OTT가 고사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 극적인 타결을 이끌어냈다. SK 측은 CJ에 합병 법인의 최대주주 지위를 넘기는 등 합병 비율에서 한 발 물러섰고, CJ 측은 독자 생존을 희망했던 CJ ENM 경영진을 설득했다.두 회사의 합병으로 CJ그룹이 구상했던 토종 OTT의 대형화 작업도 빛을 보게 됐다. 티빙은 지난해 말엔 KT의 OTT인 시즌을 흡수합병했다. 합병을 통해 당시 국내 1위 OTT였던 웨이브를 단숨에 앞질렀다. KT 통신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을 끌어들이고, KT의 TV 채널 ENA 등과 협업하는 등 시너지를 한 차례 체감한 바 있다.
업계에선 통합법인이 활성이용자수 기준 1000만명에 달하는 공룡 플랫폼으로 재탄생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누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막대한 활성사용자를 바탕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다른 OTT에 앞서 확보할 수 있는 데다 제작사를 상대로 더 높은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면서다. 두 플랫폼간 이용자 확보 경쟁과정에서 불거졌던 불필요한 마케팅 비용을 아끼고, 절감한 비용은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투입해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식의 선순환도 꾀하고 있다.
한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좋은 시나리오와 작품 및 배우들이 넷플릭스로 향하는 이유는 막대한 가입자 기반을 바탕으로 창작자들에 '최소 수익'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합병으로 1000만명 가까운 방문자를 보유한 플랫폼으로 재탄생하면 토종 콘텐츠 육성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OTT 시장 구도를 '넷플릭스 대 티빙'의 2파전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도 웨이브와의 통합으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이다. OTT 업계 관계자는 "OTT가 난립하면서 각 서비스마다 따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소비자들의 피로감이 커진 상황"이라며 "토종 OTT가 티빙을 중심으로 정리되면 소비자 입장에서도 부담을 덜게 된다"고 말했다. 빅데이터 플랫폼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티빙과 웨이브의 월 합산 사용 시간은 약 9029만 시간으로 넷플릭스(1억시간)의 약 87.7%까지 추격할 것으로 전망된다.
재무 우려도 급한 불 끌 듯...공정위 판단은 변수로
재무적인 측면에서도 양사 통합을 통해 '급한 불'을 끌 전망이다. SK스퀘어는 이번 합병으로 웨이브 상장이라는 숙제에서 새 돌파구를 찾을 전망이다. 웨이브는 콘텐츠 경쟁력 강화를 위해 2019년 2000억원 규모의 5년 만기 전환사채(CB)를 발행해 자금을 마련했다. 미래에셋벤처프라이빗에쿼티(PE)와 SKS PE가 투자자로 나섰다. 내년까지 기업공개(IPO)에 성공하지 못하면 원금에 만기 보장 수익률 3.8%를 쳐서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해법을 찾지 못해왔다. 실적 악화로 신음하던 CJ ENM도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CJ ENM은 올 들어 지난 3분기까지 733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308억원의 흑자를 거둔 것과 대비된다. 순손실은 2644억원에 달했다. 영화·드라마 부문의 부진과 2021년 말 인수한 엔데버콘텐츠(현 피프티시즌)의 실적 부진이 발목을 잡았지만 가장 큰 손실은 티빙에서 나왔다.
다만 티빙과 웨이브가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를 넘어야 한다. 지난해 공정위는 티빙과 시즌의 기업결합심사 당시 양사 합산 점유율(18.05%)이 1위 넷플릭스(38.22%)에 절반에도 못미친다고 보아 합병을 승인했지만 이번 합병은 '체급'이 다르다. 티빙과 웨이브의 합산 점유율은 약 32%라 규제기관의 고심이 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합병 과정에서 티빙과 웨이브 주주의 지분율이 희석돼 지주사의 자회사·손자회사에 대한 의무 지분율 요건에 저촉될 수 있는 점도 난관으로 꼽힌다. 공정거래법상 지주사는 비상장 자회사 및 손자회사의 지분을 40% 이상 보유해야 한다. CJ ENM이 합병법인이 지분율을 40% 이상 유지하려면 지분을 추가로 매수해야 한다. 여기에 수천억의 비용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양 사의 복잡한 지분구조상 주주들의 만족할만한 합의를 이끌어내기까지 고비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차준호 / 하지은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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