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프랑스 파리 외곽에 있는 한 비행기 격납고에선 사우디아라비아 장관들이 주재하는 화려한 연회가 열렸다.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지를 결정하는 투표에 참석할 각국 대표단을 위한 자리였다. 블루 랍스터, 오세트라 캐비아 같은 값비싼 음식이 나왔고, 참석자들은 프랑스 유명 조명영상쇼인 송에뤼미에르도 볼 수 있었다. 사우디 장관들은 투자 기회를 언급하며 “귀국이 우리에게 투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사우디 리야드가 2030 엑스포 개최지로 결정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평가되는 ‘오일머니’가 얼마나 강력하게 작용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일각에서는 각국 정부 최고위층에 사우디가 현금을 뿌린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한국과 이탈리아 등 경쟁국은 현금 살포가 불가능하지만, 막대한 오일머니를 보유한 왕조국가 사우디에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도 동력으로 작용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미스터 에브리싱’으로 불리는 그는 사우디 고위 인사들에게 어떻게든 2030 엑스포를 따오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석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다변화하는 계기이자 ‘억압적인 왕조국가’란 이미지를 바꿀 기회라고 판단해 유례없는 총력전을 벌였다는 분석이다.
사우디는 최근 2034년 월드컵과 2029년 동계 아시안게임, 2034년 하계 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국제행사를 잇따라 유치하고 있다.
빈 살만 왕세자도 직접 뛰었다. 지난 6월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 기간에는 리셉션을 열고 각국 고위 인사를 만났고, 최근엔 파리 외곽에 있는 본인 소유의 호화로운 성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초청해 대화를 나눴다.
이처럼 사우디는 2년 이상 전 국가적으로 유치 활동을 벌였지만, 한국에 주어진 기간은 상대적으로 짧았다. 한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엑스포 유치에 공을 들인 건 정부가 교체된 이후인 지난해 7월. 사우디보다 1년 이상 늦었다. 부산 엑스포를 홍보하기 위해 여러 국가를 방문한 엑스포유치위원회 관계자들이 가는 곳마다 “사우디는 한참 전에 다녀갔다”는 말을 들어야 했을 정도다.
하지만 엑스포 유치 활동을 통해 한국이 국제사회의 주요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는 분석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3~24일 파리에서 BIE 대표단을 초청해 만찬 및 오찬을 한 자리에서 “대한민국은 공적개발원조(ODA) 자금을 대폭 확대해 원조받는 국가들이 스스로 도약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맞춤형 개발 협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소프트파워 위상을 확인한 계기라는 해석도 있다. 정부와 기업의 고위 인사들이 BIE 대표단을 만날 때마다 K팝, K무비, K푸드 등 한국 문화에 관한 언급이 나왔다고 한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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