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도 한 달밖에 남지 않은 12월 첫날이다. 올 한 해 한국 경제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서 중요했던 핵심어를 뽑는다면 ‘고금리’가 반드시 포함될 것이다. 작년 초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시작되고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올릴 때는 거의 40년 만에 나타난 현상이라 당황스러운 분위기가 역력했다. 또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만 종료되면 이 상황이 빨리 끝나리라는 현실 부정 같은 기대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2년 가까이 흐른 지금, 전쟁은 추가됐고 금리는 아직 떨어지지 않고 있다.
조경용 나무의 거래 절벽도 따지고 보면 고금리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주거용, 상업용 가릴 것 없이 공사가 미뤄지거나 중단되는 상황이라 새로 나무 심을 수요가 크게 꺾인 것이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된 것은 수요 측에서는 대출 자체도 어렵지만 대출 비용인 이자가 크게 뛴 것이 원인이고, 공급 측에서는 원자재와 인건비 등이 모두 오른 영향이 컸다. 또한 공급 측에서도 공사를 일으키고 분양대금을 받을 때까지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데, 이 역시 높은 금리로 여의치 않다. 조경용 나무까지 영향을 받으니, 금리의 영향은 어디까지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금리는 원래 모든 경제 현상의 기저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경제 변수다. 당장 주식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경제성장률도 꺾인다. 금리는 빌린 돈에 주고받는 대가이기 때문에 금리가 올라가면 주식처럼 원금이 사라질 위험이 있는 투자 대상의 매력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또한 어느 나라든 대출이나 채권처럼 원금 상환 의무가 있는 빌리는 방식의 금융 비중이 커서, 금리가 올라가면 자금이 비싸져 전체적인 금융 규모가 위축되고 경기도 냉각된다.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는 것이다.
고금리는 금융 산업 자체를 매우 예민하게 만들기도 한다. 연초에 미국 실리콘밸리은행 등이 파산하고 국제적 금융회사인 크레디트스위스가 위기 끝에 다른 스위스 은행인 UBS에 인수된 일련의 사건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부터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사모펀드업계와 벤처캐피털업계는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이들 업계가 위축되면 스타트업과 벤처 회사, 유망한 중소기업들이 성장하는 데 제동이 걸린다. 이 분야 생태계의 불안은 대기업과 달리 생사가 달린 문제라는 점에서 더 걱정스러운 면이 있다.
금리가 고점에 이르렀다는 기대가 만연하지만, 속시원하게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섣부르다.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중장기적으로 우려했던 문제가 빨리 닥친 것뿐일 수 있다. 그 배경에는 첫째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움직임과 이로 인한 생산 비용 상승, 둘째 세계적 차원의 생산가능인구 정체 및 감소가 있다.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찰스 굿하트가 2020년 출간한 책 <인구 대역전>에서 강조한 것처럼, 그동안은 중국의 생산가능인구 증가가 인플레이션을 막았지만 중국도 생산가능인구의 정점을 지났다. 전반적으로 생산 비용이 상승하는데 고령화로 소비만 하는 인구가 늘어나 인플레이션을 잡기도, 금리를 낮추기도 어려워지는 것이다.
혹시 생성형 인공지능(AI)과 양자컴퓨터, 핵융합 발전 등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생산성을 높인다면 상황을 반전시킬 것이다. 그러나 가정에 의존해 낙관적으로 지켜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금리가 잠시 꺾이더라도 경각심을 갖고 더 큰 파도에 대비해야 한다. 굿하트는 같은 책에서 저금리로 비대해진 가계, 기업, 정부의 부채를 경고했다. 연금 및 노동 개혁 같은 구조 개혁도 절박하게 진행해야 한다. 고통스러워도 금리가 경제의 잣대 역할을 하게 둬야 한다. 진짜 겨울은 아직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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