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부터 한동훈 법무부장관에 이르기까지 정치 테마주로 묶인 4년여 동안 그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개인 투자자들 전화는 단 한 통도 없었습니다. 투자자들도 우리가 무관하다는 것을 아는거죠. 그러면서도 투자하는데 이걸 저희가 어떻게 막겠습니까."
유가증권시장 상장 합성피혁 생산업체인 '덕성'의 기업설명(IR) 담당자가 지난 1일 기자와 통화에서 한 말입니다. 2020년 초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부터 테마주로 꼽혀온 덕성은 올 여름에는 초전도체 테마주로 주목받았고 최근 들어선 한동훈 법무부 장관 테마주로 편입됐습니다. 수식어만 바꿔달뿐 수년째 테마주 취급을 받고 있는 겁니다.
이 담당자는 회사가 본업으로 조명받을 새도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진 불안정했던 영업환경이 최근 몇년 사이 공 들여 개발한 제품들이 아디다스와 애플 등에 납품되기 시작하면서 제자리를 찾을까 기대했다"면서 "이런 점은 거의 주목받질 못하고 말도 안 되는 테마들에 엮이면서 시장의 오해만 샀다"고 말했습니다. 매번 '회사와 무관하다'며 해명 공시도 내놓았지만 개인들은 오히려 몰렸습니다. "정치 테마주에는 해명 공시가 아무런 의미 없다"는 게 경험에서 나온 그의 결론이었습니다.
지난 1일 장 마감 이후 한국거래소는 대상홀딩스우에 대해 매매거래를 정지했습니다. 지난달 29일 투자경고종목으로 지정한 데 이은 조치인데요. 거래소 시장감시규정에 따르면 투자경고종목 지정 이후 주가가 이틀 이상 40% 넘게 급등할 경우 하루 동안 매매거래를 정지합니다. 실제 대상홀딩스우는 최근 이틀 사이 약 69% 상승했습니다. 기간을 넓혀보면 무려 5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는데 이 기간 상승률이 무려 270%에 달합니다. 이 닷새 동안의 투자주체별 수급을 보면 개인 홀로 2억원가량을 순매수했습니다. 개인들만의 '외끌이' 장세로 질주 중인 겁니다.
대상홀딩스는 임세령 부회장의 연인인 배우 이정재가 한 장관과 현대고등학교 동창이어서 한 장관 테마주로 분류됐습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한 장관이 이정재와 함께 서울 서초구 소재 모 고급 갈빗집에서 저녁식사를 한 뒤 찍은 사진들이 공유됐는데요. 두 사람의 친분이 사진으로써 증명되자 투자자들이 한껏 고무된 겁니다.
이 기업뿐만 아닙니다. 보통주 대비 거래량이 부족해 주가 변동성이 큰 '우선주' 중심으로 급등세가 이어졌습니다. 태양금속우는 전일보다 가격제한폭(30%)까지 오른 8060원에 장을 끝냈고 태양금속도 13.67% 뛴 4740원에 마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날 상한가를 기록한 대상홀딩스우를 비롯해 덕성우(17.49%)와 깨끗한나라우(6.76%) 등 다른 우선주 주가도 강세를 보였습니다.
태양금속은 한우삼 회장이 한 장관과 같은 청주 한 씨여서, 깨끗한나라는 청주 공장이 현재 한 장관의 유력 출마지인 충북 청주시 흥덕구에 위치했단 점 때문에 테마주가 됐습니다. 덕성은 김원일 사외이사가 한 장관과 서울대 법대 동문이란 점이 부각됐습니다. 덕성은 지난달 27일 "최근 당사 주식이 정치 테마주로 거론되고 있지만 과거와 현재 당사의 사업 내용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공시했지만 이후로도 우선주는 연일 상한가를 찍으며 가파르게 올랐습니다. 지난 8거래일의 기간 동안 덕성우는 무려 467% 폭등했습니다.
정치 테마주 현상은 각종 선거 때마다 반복되고 있습니다. 최근 사례들 가운데에서 보면 한 장관 테마주 붐은 올 초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의 대표 관련주인 안랩이 크게 오르내렸던 것과 오버랩됩니다. 코스닥 상장사 안랩은 안 의원의 당선 기대감에 힘입어 지난 1월 들어 그 달 26일까지 44% 급등했는데요. 하지만 3월 8일 김기현 의원이 당선되자 다시 급락하면서 그간의 상승분을 전부 되돌렸습니다.
안랩 주가는 작년 3월 중에도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던 안 의원의 총리설이 힘을 받으면서 수직 상승한 바 있습니다. 당시 5거래일 연속 올랐는데 이 기간 주가 상승률이 100%를 웃돌았습니다. 직전달인 그해 2월 종가 대비로는 170% 넘게 상승했습니다. 지난달 공시된 안랩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안 의원은 안랩 지분을 18.57% 보유 중입니다.
사실상 개인들만의 매매 공방이 이뤄지는 이들 주식에서 승자와 패자는 모두 개인입니다. 최근 한 장관 테마주로 엮여 급등했다가 이내 급락한 종목들의 토론 게시판을 보면 곡소리가 흘러넘칩니다. 주주들은 '어제 손절했어야 하는데…내가 미쳤지', '한 장관, 배우 이정재와 밥 한 끼만 더 먹어달라' 등 글을 적었습니다. 한편 여전한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는 우선주들 토론게시판에는 치킨값과 담배값, 커피값 등을 벌었다는 이른바 '단타족'들의 글들만 가득합니다.
이경준 혁신IB자산운용 대표는 "개인 투자자들도 해당 테마주들이 실제로 본업에 수혜를 받을 것이라 생각하진 않을 것"이라며 "주도 섹터가 부재한 상황에서 매매할 곳을 찾아가다보니 테마주에 더 크게 반응하는 듯하다. 기업가치에 기반을 두지 않는 비이성적인 투자는 단기 급락세를 맞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투자를 결정한 경우라면 매매 시기와 주기를 잘 조절해 신중하게 접근하길 권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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