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의 사막화를 이해하려면 먼저 개념이 잡힌 ‘식품의 사막화(FD·food desert)’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용어는 1990년대 초 파운드화 위기 이후 신선 식품을 구하지 못한 영국 스코틀랜드 빈곤 주민들의 영양 불균형과 사회적 고립 등이 심해진 데서 비롯됐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기 어렵듯 신선 식품을 구할 수 있는 상점이 없어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금융의 사막화란 농촌 등에서 유인 점포가 사라지는 현상을 뜻한다.
국내 금융회사의 점포 폐지는 이용 고객의 의견과 편리를 감안하지 않고 일방적 결정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금융 사막화가 더 빨리 진행되는 악순환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 6월 말 현재 은행 점포 수는 10년 전에 비해 25% 감소했다. 증권사 점포 폐지도 급속히 이뤄지고 있다. 한때 1100개를 웃돌던 증권사 점포 수는 올해 말(계획분 포함) 820개로 급감한다.
우리나라 금융의 사막화는 세계 보편적인 요인과 국내 제도적 요인, 금융사 자체 요인이 복합된 결과다. 하지만 OECD 선발 회원국에 비해 금융의 사막화가 두 배 정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것은 자체 요인, 특히 이익만을 추구하는 금융사의 점포 전략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문제는 금융의 사막화를 막지 못하면 우리 경제가 가진 취약점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부작용이 증폭될 것이라는 점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인구구조와의 불일치에 따른 부작용이다. 저출산·고령화가 심화하는 구조에서 금융 사막화는 보이스 피싱 등 각종 금융사고로 직결돼 금융 시스템상 균열을 초래할 확률이 높다.
이미 위험 수준을 넘은 계층 간 소득 불균형을 더 심화시키는 것도 문제다. 코로나 사태 이후 중산층이 줄고 빈곤층이 두터워진 소득구조에서 금융사 점포가 고소득층 위주로 운영될 경우 빈곤층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지역 간 격차 심화에 따른 부작용도 우려된다. 금융 사막화로 돈이 수도권에 몰리면 이미 거품이 우려되는 지역의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은 붕괴할 수밖에 없는 수준까지 오르고, 금융 사막 지역은 ‘시카고 공포’가 일어날 확률이 높다. 이는 기업, 사람, 돈이 빠져나가면서 방치된 공장과 빈집이 범죄의 온상으로 전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금융의 사막화를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분명한 것은 금융사에만 맡길 수 없다는 점이다. 정책당국 주도로 금융사들이 연대해 ‘프로 보노 퍼블리코(pro bono publico·공공선)’ 차원에서 풀어야 한다. 지역 국회의원이 주민의 의견을 반영해 가교 역할을 하는 것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정책당국은 금융 사막화 개념과 측정지표부터 마련해야 한다. 일본의 사례를 참조해 문제를 풀어보는 방법도 있다. 노인 거주지로부터 500m 이내에 은행과 증권사의 유인 점포가 없으면 금융 사막화와 금융 난민으로 규정해 해당 지역에 유인 점포를 열거나 이동형 유인 점포를 운영하면 보조금을 주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은행과 증권사가 불가피하게 유인 점포를 폐지하더라도 반드시 이용 고객의 ‘금융 지식(FQ·financial quotient)’과 ‘디지털 지식(DQ·digital quotient)’을 높이는 조건을 충족시키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 금융 난민을 상대로 한 보이스 피싱을 막기 위한 대책과 함께 유인 점포를 폐지하는 은행과 증권사에 피해보상을 위한 별도 준비금을 쌓도록 하는 조항도 마련해야 한다.
금융 난민을 금융 정착민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경제의 단비 격인 돈부터 돌고, 이를 금융 사막 거주 주민이 느껴야 한다. 금융 정착민에 의해 금융 사막이 금융 옥토로 변하면 저출산·고령화, 소득 불균형, 지역 간 격차와 부작용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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