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로슈가 미국의 비만·당뇨 치료제 개발기업인 카못(Carmot)을 27억달러(3조 5000억원)에 인수했다. 항암제의 강자인 로슈가 비만·당뇨 치료제 개발기업을 인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0년대 초반 먹는 다이어트약 제니칼을 출시했다가 부작용 논란으로 한동안 이 분야 개발이 뜸했던 로슈가 최근 비만치료제 시장이 급성장하자 인수·합병(M&A)으로 이 경쟁에 다시 합류한 것이다. 로슈는 최근들어 안과·희귀·뇌·심혈관 질환 치료제 등으로 기존 항암제 중심의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을 다각화하고 있다. 로슈는 지난해 전문의약품 매출 480억달러(약 62조 7000억원)를 기록한 세계 6위 제약사다.
로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 소재한 비만·당뇨 치료제 개발기업 카못을 인수하기위한 계약을 체결했다고 4일(현지시간) 발표했다. 27억달러는 전액 현금으로 지불하고 향후 임상 결과에 따른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으로 4억달러를 추가로 지불할 수 있다. 인수대금 납입은 내년 1분기 완료될 예정이다.
로슈에 따르면 카못은 음식을 섭취하거나 혈당이 올라갈 때 소장에서 분비되는 인크레틴 호르몬을 기반으로 비만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치료물질을 개발중이다. 인크레틴 호르몬은 식사 후 분비되는 장 호르몬으로, 인슐린 분비를 자극하고 식욕을 억제해 혈중 포도당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로슈는 인크레틴 기반의 카못 파이프라인이 심혈관, 망막 및 신경퇴행성 질환을 포함해 다른 질환으로 확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카놋의 주요 파이프라인인 'CT-388'은 임상 2상 준비가 완료된 2중 GLP-1·GIP 수용체 작용제다. 제2형 당뇨병 유무에 관계없이 주 1회 피하주사(SC)하는 이 약은 단독 및 병용요법으로 체중 감량 효과를 내며 다른 적응증으로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 'CT-996'은 1일 1회 먹는 약으로 개발중이며 제2형 당뇨병 유무에 관계없이 비만 치료를 위한 임상 1상이 진행 중이다. CT-868은 과체중 또는 비만이 있는 제1형 당뇨병 환자의 치료를 위해 1일 1회 피하 주사하는 2중 GLP-1·GIP 수용체 작용제로 현재 임상 2상이 진행중이다.
로슈측은 "CT-388에 대한 기존 임상 데이터는 차별화된 효능으로 체중 감량을 달성하고 유지할 수 있는 동급 최고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며 "(체중 감량에도) 근육량이 유지되는 것과 같은 강점을 바탕으로 기존 로슈의 파이프라인과 결합해 큰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슈그룹의 토마스 쉬네커 최고경영자(CEO)는 "비만은 다른 많은 질병의 원인"이라며 "카못의 심혈관 및 대사 질환 관련 파이프라인을 결합함으로써 환자에게 더 나은 치료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항암제 강자로 알려진 로슈는 희귀·만성질환으로 저변을 확대하며 관련 임상을 진행중이다. 최근 3년 사이 새로운 희귀질환치료제 에브리스디, 엔스프링이 연달아 국내 허가를 받았고 최근에는 안과질환 최초의 이중특이항체(bispecific antibody) 치료제 바비스모의 국내 허가도 획득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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