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수술 후 콧속에 있던 거즈를 제거하지 않아 환자에게 후각 손실을 입힌 의사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다만 환자 스스로 상태를 악화한 측면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배상 책임은 일부로 제한됐다.
대법원 2부는 5일 환자 A씨가 의사 B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환자 A씨는 2016년 의사 B씨에게 코를 높이는 수술을 받았다가 코 통증과 호흡곤란 증세를 느꼈다.
이후 이비인후과 진료를 받던 중 A씨의 오른쪽 콧속에서 거즈와 함께 종창이 발견됐다. 계속된 치료에도 불구하고 냄새를 맡지 못하는 '무후각증' 상태가 이어지자 A씨는 B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A씨가 이번 수술 외에 콧속에 거즈가 남을 만한 수술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점과 B씨가 작성한 진료기록부에 수술에 쓴 지혈용 거즈의 개수와 제거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해 1심에서 B씨의 과실을 인정했다.
1심 재판부는 "B씨가 이 사건 수술 후 거즈를 완벽히 제거하지 않은 채 장기간 방치한 과실로 인해 A씨에게 비강 내 감염과 종창이 발생했다"며 "이로 인해 코의 변형과 무후각증이 발생하게 됐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당초 손해배상액 산정에서 A씨의 노동능력상실률이 15%라고 보고 일실수입(피해자가 잃은 장래의 소득)을 약 4900만원으로 계산했다.
그러나 이후 B씨의 책임을 60%로 제한했다. A씨가 적절한 시기에 염증 치료를 받지 않아 무후각증으로 악화한 사정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실수입과 치료비(약 1000만원)를 더한 금액의 60%에 위자료 1000만원을 합한 총 4600여만원을 손해배상 금액으로 책정했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노동능력상실률을 산정하는 기준으로 외국 사례를 토대로 만들어진 맥브라이드 평가표 대신 국내 의학학술단체의 장애평가기준을 적용했다.
적용 후 노동능력상실률은 3%로 낮아져 일실수입은 1400여만원으로 계산됐고 총 손해배상 금액은 2500여만원으로 책정됐다.
재판부는 "한국 현실에 맞는 노동능력상실지수를 설정한 대한의학회 기준이 다른 평가 기준보다 합리적인 기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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