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촛불시위가 잦아들 무렵 또다시 거리를 메운 것은 불교계였다. MB 정부의 종교 편향, 불교 차별에 항의하는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가 8월 27일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전국에서 모인 20만 불자들의 “MB 아웃(OUT)” 규탄 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이 소식을 들은 고우 선사(1937~2021)는 얼마 뒤 지리산 벽송사에서 열린 ‘벽송선회’에서 이렇게 일갈했다. “20만이라는 숫자가 폭력이 돼서는 안 됩니다. MB를 규탄하고 미워하는 것은 불교의 방식이 아닙니다.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불자의 길입니다.”
숫자는 힘이다. 집회 참가자 수는 간절한 열망의 크기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상대를 억누르는 힘이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우리 숫자가 이렇게 많은데 이래도 덤빌 거야?”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성과 논리, 과학보다 숫자의 힘을 앞세우면 폭력이나 다름없게 된다. 뜻을 관철하기 위해 숫자의 힘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는 고우 선사의 말씀이 깊은 울림을 남기는 이유다. 하지만 지금도 국회에서는 숫자의 힘이 횡행하고 있다. 대의정치, 민주정치의 기본 원칙인 ‘다수결’이라는 무기를 통해서다.
압도적 다수 의석(168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에 다수결은 참으로 편리한 도구다. 대화와 타협은 구색용일 뿐, 거대 야당은 힘으로 밀어붙였다. 문재인 정부 끝자락의 검수완박법(검찰수사권완전박탈법)이 그랬고, 윤석열 대통령이 결과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과 간호법, 방송 3법, 노동조합법이 그랬다. 각 법안의 문제점과 부작용에 대한 소수 여당의 반대와 설득은 소용없었다. 6개월의 업무 공백만 남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는데도 검사 세 명을 또 탄핵했다.
다수결은 원래 의사결정의 가장 이상적 방식인 만장일치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에 채택한 대안이다. 소수보다는 다수의 판단이 합리적일 것이라는 가정 위에 서 있지만 다수의 선택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소수 의견이 다수의 횡포에 무시당하지 않게 하려면 다수결 원칙에도 소수 의견 존중, 자유로운 토론과 설득, 대화와 타협 등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도 없이 수의 힘으로만 결정되면 민주적 다수결이 아니라 다수의 횡포요 폭력일 뿐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다수결 폭주’는 브레이크가 풀린 모양새다. 장관이든 판·검사든 누구든 마음에 안 들면 날려버리겠다는 태도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시도가 자진 사퇴로 불발하자 “제2, 제3의 이동관도 탄핵하겠다”며 기세등등하다. ‘쌍특검 3국조’도 공언하고 있다. 올해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리는 8일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대장동 50억 클럽 등 두 개의 특검 법안(쌍특검)을 처리하고, 곧바로 임시국회를 열어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 세 개의 국정조사를 밀어붙일 태세다.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의 거부권을 제한하는 입법안도 발의한 상태다. 내년 총선에서 개헌과 대통령 탄핵소추가 가능한 200석을 확보하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재명 대표는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총선 승리를 위해서라면 병립형 비례대표제 회귀나 위성정당 창당도 가능함을 시사했다. 칼은 쓰기에 따라 활인검(活人劍)도 되고 살인검(殺人劍)도 된다. 민주당에 다수결은 국민을 살리는 칼인가, 죽이는 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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