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국내 개봉한 영화 ‘어바웃타임’에 나오는 대사로 인터넷 ‘밈(meme·유행어)’으로 만들어지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구절이다. 이 대사 덕분에 일흔네 살의 배우 빌 나이는 인자한 아버지의 이미지를 얻게 됐다.
‘전 세계인의 아버지’ 소리를 듣는 빌 나이가 이번에는 영화 ‘리빙:어떤 인생’에서 세계대전 이후 배경의 은퇴를 앞둔 공무원 윌리엄스로 분했다. 영국 런던시청 공공사업부 수장인 윌리엄스는 전형적인 복지부동형 관료다. 골치 아픈 민원이 들어오면 최대한 다른 부서로 떠넘겨 버린다. 만약 떠넘기기에 실패하면 손길이 닿지 않는 구석에 밀어놔 버린다. 그래서 별명이 ‘미스터 좀비’다.
어릴 적 그의 꿈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중절모를 쓰고 매일 아침 런던행 출근 열차를 타는 직장인이 되고 싶었다. 윌리엄스는 결국 뜻을 이뤘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왔는데 갑자기 신상에 변화가 생겼다. 의사로부터 곧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살날이 몇 달 남지 않았다는 말에 잠시 방황하다가 일을 하나 생각해 낸다. 한쪽 구석에 미뤄놨던 민원이다. 새로운 놀이터를 만들어달라는 청원. 그는 사무실로 복귀해 의욕을 불사른다.
시한부 설정은 다소 뻔하지만 어쩔 수 없다. 1952년 개봉한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이키루’(살다)를 각색한 영화여서다. 하지만 진부한 영화라는 인상을 받기 어렵다. 빌 나이의 압도적 연기력 덕분이다. 그는 주름살 하나, 입꼬리 근육 하나까지 섬세하게 연기하며 영혼 없는 노년의 관료를 완벽하게 표현했다. 생의 막바지에 작은 모험을 떠나고, 원하는 삶의 엔딩을 이뤄내는 좀비 아저씨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끌어낸다.
세련된 영상미를 자랑했던 영화 ‘캐롤’(2016) 제작진이 연출한 동화 같은 장면도 영화의 볼거리다. 옛날 사진 같은 질감으로 런던의 정경을 담은 오프닝부터 눈발이 서리며 마무리되는 윌리엄스의 마지막 장면까지, 보석 같은 장면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는 13일 개봉.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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