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2월 08일 14:37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힘 없는' 비상장사 2대주주 주식
기획재정부는 지난 4일 고(故) 김정주 넥슨 창업자 유족이 상속세로 물납한 그룹 지주회사 NXC 지분을 오는 18일부터 공개 매각한다고 밝혔다. 매각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공매 포털 온비드에서 진행된다. 매각 대상은 지분 29.29%로 매각 예정가격은 4조7149억원이다. 지분가치 3조9291억원에 상증세법에 따른 최대주주 주식 할증으로 20% 프리미엄(7858억원)도 합산됐다. 입찰 참여 기준에 외국 자본을 배제한다는 조항이 없어 한국 게임 산업에 관심이 큰 중국이나 중동기업들의 참여가 기대되고 있다. 특히 크래프톤(13.73%), 넷마블(17.52%) 2~3대주주 지위를 확보한 이력이 있는 텐센트, 넥슨 일본법인에 2조1700억원을 투자해 3대주주에 오른 사우디국부펀드(PIF) 등의 참여 여부에 주목된다. 2019년 10조원 규모의 넥슨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MBK파트너스,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베인캐피탈 등 대형 사모펀드(PEF) 운용사, 넷마블 엔씨소프트 등 게임사의 참여에도 관심이 모인다.
거론되는 후보는 많지만 실제 이들이 지분 인수를 결정하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로 NXC 지분 인수전에 뛰어들 의지를 보이는 곳이 아직은 나오지 않는 분위기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선 매물로 나온 지분이 사업법인인 자회사 넥슨이 아닌 비상장 지주사의 2대주주 지분이란 점에서 '힘 없는 주식'으로 분류하고 있다. 29.29%의 의결권으론 상법상 주주총회의 보통결의(출석주주 과반 찬성)는 물론 특별결의(출석주주 3분의 2 이상 찬성) 사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현재 최대주주는 69.34%를 가진 오너 일가다. 배당 성향도 5.5%로 낮다 보니 매력도가 크지 않다.
통상 소수지분 투자유치엔 하방 보장 장치가 활용되지만 이번엔 다르다. 매각 주체가 정부라 대주주를 상대로 별도의 주주간계약 체결을 위한 협상을 요구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로선 최대주주인 유정현 이사의 협조를 얻어 추후 단일 최대주주로 올라서는 우선매수권이 있지 않는 한 눈길을 끌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오너 일가가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자사주 형태로 인수할 가능성도 언급되지만 자금 여력을 고려하면 가능성은 적다. 원매자가 있더라도 입찰 가격 하락을 위해 유찰을 기다릴 가능성이 크다.
유찰 유력…'행정편의주의' 비판도
이같은 사정 탓에 이번 공매가 자연히 유찰 수순이 될 것이란 데에 공감대가 모였다. 입찰자가 없으면 25일 2차 입찰이 실시된다. 3차(2024년 1월 1일)부터는 목표예정가액을 90%로 낮춰 진행하고 이때도 유찰되면 4차(1월 8일)에서 80%까지 낮춰 매각을 추진한다. 기재부는 NXC 주식 지분가치가 다른 종목보다 상당히 크다는 점에서 2차까지만 공매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온비드 입찰 결정을 두고 "공무원식 행정편의주의에서 비롯된 악수"라는 비판 여론도 나온다. 그간 물납된 비상장사 지분은 매각에 어려움을 겪는 전례가 많았다. 기재부는 입찰 결정에 앞서 회계법인들로부터 매각과 관련해 비공식 자문을 받으면서 온비드 공매 시 유찰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주간 협약 등의 장치가 없는 한 사실상 딜이 어렵다는 견해가 전달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기재부와 캠코는 유찰 우려에 대한 여론과 관련해 "다양한 매각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과거 수차례 유찰 끝에 외부기관과의 협력으로 매각을 성사시킨 사례가 있었다"며 매각 주관사 선정 가능성도 시사했다. 유찰 뒤 매각 주관사를 별도로 선정할 가능성이 있다.
대주주와 교감 없는 지분 인수 '위험'
매각이 성사되더라도 인수자의 험로가 예상된다. 소수지분 투자자가 안정적으로 투자를 회수하려면 대주주의 협조가 필요하지만 인수부터 사전 교감이 없었다 보니 갈등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2012년 온비드에서 매각된 비상장사 2대주주 지분이 주주 간 갈등으로 비화했던 사례가 있었다. 정부는 당시 고(故)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차명 재산이었던 베스트리드리미티드(옛 대우개발)를 공매로 내놨었다. 부산 소재 중견 수산업체인 우양산업개발(당시 우양수산)이 이를 인수해가면서 에이원컨트리클럽(에이원CC) 지분 49% 등 주요 자산을 확보하게 됐다. 에이원CC의 최대주주(51%)는 오너 일가가 소유한 아도니스였다.
우양수산개발은 당시 아도니스가 경영권을 휘두르면서 에이원CC에 200억원대 손실을 끼쳤다며 김 전 회장 부인인 정희자 씨 등을 고소했다. 대주주와 수년간 법정공방을 벌였지만 별다른 소득은 얻지 못했다. 우양수산개발은 2년 전부터 에이원CC 지분 매각에 나섰지만 아직 인수자를 찾지 못한 상황이다.
한 관계자는 "우양수산개발은 당시 공매더라도 49% 수준의 지분이면 유의미한 경영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인수를 결정했다. 대주주와 사전적인 교감 없이 온비드에서 인수했는데 지분 인수 후 기대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면서 갈등이 커졌고 결국 소송전으로까지 확대됐다"며 "대주주와 교감 없는 지분 인수가 위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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