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의 장기 숙원 법안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서발법)의 연내 통과가 사실상 물건너 갔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서발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의료 민영화 논란이 있는 의료·보건 분야를 제외한 '절충안'을 제시하며 야당에 대한 설득에 나섰지만 국회 내에서 아예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정부는 11일부터 열리는 임시국회에서라도 처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총선 전 마지막 예산안 편성을 둘러싼 여야 간 다툼과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별검사(특검) 도입 등 정쟁 속에서 이미 정치권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발법은 의료, 관광, 콘텐츠 등 유망 서비스 산업에 연구개발(R&D) 자금을 지원하고 세제 혜택을 주기 위해 2011년 정부 입법으로 처음 발의됐다. 하지만 의료계 등에서 서발법이 의료 민영화로 이어지며 의료 공공성을 침해할 수 있다며 반대해 12년 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서발법은 문재인 정부 시절엔 기재부 뿐 아니라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도 당론으로 추진했던 사안이다. 민주당은 당시 의료법, 약사법, 건강보험법, 국민건강증진법 등 소위 '보건·의료 4법'을 제외한 서발법 제정을 당론으로 추진한 바 있다. 김태년 당시 원내대표는 2021년 3월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서발법을 3월 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윤석열 정부는 최근까지도 서비스 산업을 전반적, 종합적 관점에서 지원하기 위해 보건·의료 등 특정 분야를 배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최근 의료·보건 분야를 적용대상에서 제외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그간 민주당이 주장했던 안과 동일한 것으로 야당 입장에선 반대 명분이 아예 사라진 셈이다. 홍두선 기재부 차관보는 "국회에서 보건의료 관련 주요 법률을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뤄질 경우 정부는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발법은 또 다른 정부의 숙원 법안인 재정준칙과 함께 정치적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한 상황이다. 국회에 따르면 여야는 남아있는 쟁점 법안 3개씩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 놨다. 여당은 서발법과 재정준칙을 비롯해 감사보고서를 내야 하는 보조금 사업자 대상을 확대하는 보조금관리에대한법률 개정안을 남겨놨다.
야당은 친야 성향이 주류인 사회적 기업 등에 최대 연간 약 7조원(공공조달액 70조 원의 10%)의 재정을 몰아주는 것을 골자로 한 사회적경제기본법과 공공기관의 자산 매각 시 국회 통제를 받도록 한 공공기관의운영에관한법률 개정안 통과를 밀어붙이고 있다. 민주당은 사회적경제기본법 통과 없인 서발법 등 여당 요구를 받아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취업자 1인당 노동 생산성을 비교, 분석한 결과 한국 제조업은 비교 대상 35개 회원국 중 6위로 상위권이었지만 서비스업은 27위로 하위권이었다. 제조업 대비 서비스업 지수는 34위로 뒤에서 두 번째였다. 그만큼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 불균형이 크고, 상대적으로 서비스업의 생산성이 떨어진따는 뜻이다.
기재부는 서발법 통과가 이 같은 불균형을 해소할 첫 '단추'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서발법에선 서비스업의 정의를 산업간 융합 등에 기반한 새로운 서비스업을 포괄할 수 있도록 폭넓게 정의했다. 그간 관광이나 컨텐츠, 바이오헬스 같은 기존 유망 업종과 달리 개별법이 없는 대다수 업종의 경우 지원 근거가 없어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컸다.
서발법이 제정되면 다양한 신업종에 대한 재정, 세제, 금융 지원을 비롯해 규제 개선이나 인력 양성, 연구개발(R&D)등 다양한 정책적 지원이 가능해진다. 정부가 5년 단위의 서비스산업발전 기본계획 등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 범부처 차원의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이근우 기재부 서비스경제과장은 "제조업 중심 성장이 한계에 봉착하면서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서비스 산업 육성의 필요성이 점점 커져가는 상황"이라며 "서발법이 통과되면 기존 유망 산업 뿐 아니라 우리 경제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서비스업 전반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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