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가 집밥을 안 먹으려 하고, 자꾸 '먹방(먹는 방송)'에 나온 음식을 배달시켜달라네요."
중학교 3학년 아들을 둔 한 학부모가 "최대 골칫거리"라며 털어놓은 얘기다. 얼마 전 정부가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에서 '술방(술+방송)'이 많아진 것에 대한 우려로 미디어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내놓은 가운데, "먹방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유튜브 영상 시청이 익숙한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을 중심으로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다.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미디어 음주 장면 가이드라인'을 기존 10개 항목에서 12개 항목으로 늘려 개정했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이는 '음주 행위를 과도하게 부각하거나 미화하는 콘텐츠는 연령 제한 등을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의 접근성을 최소화해야 한다'라거나, '경고 문구 등으로 음주의 유해성을 알려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유명 연예인과 인플루언서 등이 나오는 동영상 콘텐츠에서 음주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데, 법으로는 규제할 수 없으니 자율적 자제를 촉구하는 뜻에서 개정했다는 게 복지부의 설명이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유튜버로 활동하는 일부 연예인들도 청소년 및 어린이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1일 오전 KBS 쿨FM '박명수의 라디오쇼'에서 방송인 박명수는 "사실 술 먹고 방송하는 거 자체를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며 "(술을 마시며) 분위기가 좋아지고 속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재미가 있겠지만, 청소년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쳐야 하는 입장에서는 조심할 필요는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일각에서는 "먹방은 왜 규제하지 않느냐"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관련 규제는 앞서 이뤄진 바 있다. 지난해 12월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지원을 받아 '어린이의 건강한 식생활을 위한 미디어 콘텐츠 제작 및 광고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이는 △고열량·저영양 식품의 노출 줄이기 △권장 섭취량을 넘어서는 식품을 과도하게 노출하거나 이를 섭취하는 장면을 연출하지 않기 △신체에 고통을 주는 식품은 어린이 건강을 해치는 점 주의 등이 포함됐다.
그에 앞서 2018년 정부는 자칫 폭식을 유발할 수 있는 먹방 콘텐츠에 대한 규제 및 모니터링을 추진하기도 했다. 폭식의 진단기준을 마련하는 한편 TV나 인터넷 방송 등 폭식을 조장하는 미디어와 광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고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유튜브를 중심으로 하는 먹방 콘텐츠에서는 하루 정량 기준을 초과해 섭취하는 모습을 보여줘 폭식을 조장하는가 하면, 과도하게 시거나, 맵고 짜서 미각에 고통을 주는 식품 등이 경고 문구 없이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학부모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도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일 아이를 둔 엄마라고 밝힌 A씨는 "몸에 안 좋은 음식을 몇십개씩 쌓아두고 당연하듯 먹는 모습을 보며 어린 친구들이 '저 사람도 먹네! 우리도 먹어도 되겠네'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 보기 좋지 않다"며 "정도가 지나친 먹방을 못 하도록 정부 차원에서 막아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아이 둘을 키운다는 학부모 B씨도 "요즘 자극적인 음식들이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럽게 아이들 눈에 담긴다는 게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먹방을 시청하는 청소년이 많고, 이들의 식습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설문조사 결과까지 나와 우려를 더했다. 지난 4월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800개교 중고생 약 6만 명을 대상으로 한 '2022년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서 응답 청소년 10명 중 4명이 최소 일주일에 1회 이상 먹방이나 쿡방(요리 방송)을 시청한다고 답했다.
먹방과 쿡방을 보는 중고생들의 아침 결식률(주 5회 이상)은 40.7%로, 보지 않는 학생들(35.0%)보다 높았고, 야식 섭취율도 시청 청소년들(24.2%)이 비 시청 청소년(21.9%) 청소년보다 높았다. 주 3회 이상 패스트푸드, 단맛 음료, 고카페인 음료를 섭취하는 학생 비율도 먹방 시청 그룹에서 각각 29.1%, 65.4%, 22.6%로, 시청하지 않는 그룹보다 많게는 6%포인트(p) 가까이 높았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음식을 기괴하거나 과도한 수준으로 너무 많이 쌓아 먹는다든지, 맥락 없이 먹방 콘텐츠를 남발하는 식의 먹방은 강력한 규제를 가할 필요가 있다. 플랫폼의 자체적 규제뿐만 아니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차원의 심의도 해야 한다"이라며 "먹방을 시청하는 것도 중독 현상의 일부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학부모들도 먹방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건강한 식습관을 지향하는 콘텐츠를 찾아서 공유하면 어떨까 싶다"며 "콘텐츠 제작자들의 경우 많이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먹방은 이미 '레드오션'이기 때문에, 오히려 건강함을 지향하는 새로운 먹방 콘텐츠 브랜드를 만드는 게 장기적으로 부모와 학교, 정부, 개개인 차원에서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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