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두 개의 향수는 근본이 같다. 독일 저널리스트이자 동유럽 역사 전문가인 카를 슐뢰겔은 1980년대 초 소련의 행사장에서 맡았던 향기를 나중에 프랑스에서 다시 맞닥뜨리자 책을 쓰기 시작했다. 저자가 두 향수의 뿌리로 지목한 것은 ‘부케 드 카타리나’란 향수다. 1913년 러시아 제국에서 프랑스 향수 회사 알퐁스 랄레의 수석조향사 에르네스트 보가 로마노프 왕조 수립 300주년을 기념해 만들었다. 러시아 여황제 예카테리나 2세가 애용하던 향수를 개량한 것으로 이듬해 ‘랄레 넘버 1’이란 이름으로 재출시됐다.
조향사 보는 러시아 혁명과 내전을 피해 프랑스로 돌아와 코코 샤넬에게 10개의 향수 샘플을 건넸다. 샤넬은 다섯 번째를 선택했고, 이 향수가 샤넬 넘버 5라는 이름으로 출시됐다. 저자는 샤넬 넘버 5가 랄레 넘버 1처럼 북극의 공기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 전통적인 꽃향기가 아니라 알데히드를 합성해 만들었다는 것 등에 주목한다.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랄레 넘버 1의 제조법을 알고 있는 또 한 명의 조향사가 있었으니 오귀스트 미셸이다. 프랑스로 떠난 보와 달리 러시아에 남은 미셸은 국유화된 향수 회사에서 일하며 레드 모스크바를 만들었다.
책은 향수 냄새가 퍼져나가듯 향수, 역사적 인물, 정치사회사로 이야기를 확장한다. 보는 프랑스의 유명 조향사로 살아가지만, 미셸은 대숙청이 횡행한 스탈린 시대에 조용히 사라졌다. 샤넬, 그리고 스탈린 시대 외무장관이던 몰로토프의 부인 폴리나 젬추지나는 두 조향사만큼 대척점에 서 있는 두 여자다. 향수 회사들에 향수 레시피는 1급 비밀이고, 두 향수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저자의 추론일 뿐이지만 매혹적인 서사와 인물들에 저자의 주장을 따라 읽게 된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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