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발전 자회사 6곳에 올해 말까지 중간배당을 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8일 파악됐다. 누적 적자로 내년 한전채 발행한도(자본금+적립금 합계의 5배 이하)가 축소될 것으로 우려되는 데 따른 것이다. 연내 중간배당을 받으면 올해 말 기준 ‘자본금+적립금’이 늘어나 내년도 한전채 발행한도를 늘릴 수 있다.
한전은 발전 자회사에 실제 배당금 입금은 내년에 하더라도 회계상 배당 입금 처리는 올해 말까지 해달라고 요구했다. 한전이 예상하는 중간배당 규모는 최대 4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이 발전 자회사에 중간배당을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전의 발전 자회사는 한국수력원자력, 남동발전, 서부발전, 남부발전, 중부발전, 동서발전 6개사다. 이들 발전 자회사는 한전의 요구를 검토하고 있지만 일부는 배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중간배당을 하려면 이사회에서 정관을 변경해야 하는데, 상법상 연간 누적 영업이익을 넘는 중간배당은 배임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한수원은 이날 중간배당을 위한 정관 변경안을 이사회에서 논의했지만 결정하지 못하고 오는 11일 다시 이사회를 열기로 했다. 한수원은 올 들어 3분기까지 연결 기준 160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6개 발전 자회사는 모두 한전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 자회사는 한전의 중간배당 요구를 검토하고 있지만 상당수는 난색을 보이고 있다. 한전이 요구하는 중간배당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올 들어 3분기까지 160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나머지 5개 발전 자회사는 올 들어 흑자를 내긴 했지만 흑자폭은 1~3분기 누계 기준으로 남부발전 2135억원, 서부발전 2800억원, 동서발전 3402억원, 남동발전 3576억원, 중부발전 4101억원 정도다. 한전 요구를 들어주려면 올해 영업이익을 모두 중간배당하는 것은 물론 회계상 배당가능이익까지 손대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고액 배당이 자회사의 경영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 6개 자회사가 지난해 한전에 준 배당금은 904억원에 그쳤다. 그동안 실적이 좋지 않아서 배당 여력이 크지 않았다. 올해 실적이 개선됐다고 갑자기 배당을 대폭 늘리면 향후 투자 여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자회사들은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한수원 이사회는 8일 이사회에서 정관 변경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다른 5개 발전 자회사는 오는 11일부터 14일까지 이사회를 열어 정관변경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한 발전사 관계자는 “아무리 모회사(한전)가 어려워도 자회사 이사회가 회사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다른 자회사는 어떻게 하는지 서로 눈치를 볼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산업통상자원부가 한전의 재무 상황을 오판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전기요금을 충분히 올리지 못해 내년에 한전채 발행한도 초과 우려를 키웠다는 것이다. 강경성 산업부 2차관은 지난달 가정용 전기요금을 동결하고 산업용 중 주로 대기업용 전기요금만 올리면서 “한전채 발행한도를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결정했다”고 했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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