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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어내기만 하면 팔렸던 미 국채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올해 미 국채 발행 규모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시장이 국채 물량을 받아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커진 탓이다. 국채 수요의 위축이 재무부의 이자비용을 높이고 실물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주 예정된 미 재무부의 국채 입찰을 두고 월가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재무부는 11일과 12일 미 3년 만기, 10년 만기, 30년 만기 국채 총 1080억달러(약 142조5000억원)어치와 단기 국채 2130억달러(281조1600억원)어치의 입찰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전까지 워싱턴과 월가에서 미 국채는 ‘불패’로 통했다. 재정 상황과 관계없이 시장이 언제나 재무부가 발행하는 미 국채를 받아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는 평가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미 국채 발행 규모는 20조8000억달러(약 2경7546조원)로, 연간 기준으로 코로나 확산 첫해인 2020년(21조달러) 기록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재무부가 진행한 미 30년 만기 국채 입찰에서 수요의 척도로 볼 수 있는 응찰률은 2.24배로 약 2년만에 최저였다. 예상보다 수요가 부진하면서 발행금리도 4.769%로 전보다 0.051%포인트 높아졌다. 그만큼 재무부의 이자비용이 높아진 것이다.
국채 입찰의 주요 참여자인 ‘프라이머리 딜러’들의 국채 매입 비중이 높아진 것도 수요 약세를 보여주는 현상이다. 프라이머리 딜러는 Fed와 거래하는 주요 투자은행들로 국채 입찰에 참여하면서 수요가 약할 때 국채 물량을 더 많이 소화한다.
WSJ은 “프라이머리 딜러들은 지난달 30년 만기 국채 경매에서 발행량의 거의 4분의 1을 매입했는데 이는 평균의 두 배가 넘는 수치”라며 “이전 30년 만기 국채 경매도 잘 진행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장기 국채 수요가 위축되자 재무부는 국고를 메우기 위해 장기 국채 발행량을 줄이고 만기 1년 이하의 초단기 국채(T-bill)를 발행량을 늘리고 있다. 초단기 국채는 만기가 짧아 위험이 가장 낮은 투자자산으로 분류된다. WSJ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미 부채 26조3000억달러 중 1년 만기 국채 비중은 21.6%로, 권고비중(15~20%)을 웃돈다.
우려도 있다. 우선 월가가 감당해야 하는 리스크가 높아진다는 지적이다. WSJ은 “장기 채권은 전체적인 포트폴리오의 리스크를 줄여주는 기능을 하지만, (몇 주 안에 수익을 얻는) 초단기 채권은 사실상 현금처럼 취급돼 투자자들이 주식 등 위험자산에 투자할 여지를 높인다”고 설명했다.
초단기 국채 발행은 임시방편일 뿐이며 오히려 시장의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산운용사 앰버웨이브 파트너스의 공동 설립자이자 전 미 재무부 수석 고문인 스티븐 미란은 “초단기 국채 발행량 증가세가 이어진다는 것은 결국 금융 시스템의 근간인 미 국채가 매력을 잃고 있다는 신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초단기 국채 발행을 전체의 60%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것은 재무부가 시장이 국채 발행량을 흡수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한다는 뜻이며, 이는 국채 시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의미”라며 “채권 시장에 큰 여파를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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