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가 잇단 정책 리스크로 혼란에 빠졌다. 정부가 최근 추가 안전진단을 받도록 유권해석을 바꾼 데 이어 서울에서만 조합 설립 후 사업계획승인을 받지 못한 23개 사업장이 조합 해산 여부를 묻기 위한 총회를 열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리모델링 사업과 관련한 악재가 이어져 상당수 단지가 재건축으로 선회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등 정부의 용적률 상향 방침이 구체화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커 주택 공급이 오히려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서초구에서만 잠원훼미리·잠원동아·신반포청구·반포푸르지오 등 5곳이 해당한다. 송파구에서도 문정건영 문정현대 거여5단지 등이, 양천구에선 목동우성·목동2차우성 등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혼란은 지난 7월 국토교통부가 2차 안전진단 대상 범위를 크게 넓히는 방향으로 유권해석을 바꾼 데 따른 것이다. 서울시는 이를 근거로 리모델링 때 필로티(비어 있는 1층 공간) 설계와 이에 따른 최고 1개 층 상향에 대한 판단을 기존 수평증축에서 수직증축으로 바꾸기로 했다. 수평증축은 1차 안전진단으로 추진이 가능하지만, 수직증축을 하려면 까다로운 2차 안전진단을 추가로 거쳐야 한다. 허 시의원은 “조합이 법령 해석 변경에 따른 사업 지연, 비용 상승 리스크, 매몰 비용까지도 일방적으로 떠안아야 하는 문제에 대해 서울시가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택법 일몰 규정도 본격 시행된다. 정부는 2020년 주택법을 개정해 조합설립인가를 받고 3년 내 사업계획승인을 받지 못하면 총회를 통해 해산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23곳(리모델링허가단지 포함)이 연내 의무적으로 조합 해산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총회를 열어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강동구 둔촌현대2차·고덕아남·길동우성2차와 송파구 가락쌍용1차는 내년 상반기까지 순차적으로 총회를 예정하고 있다. 반면 19곳은 집행부 부재 등으로 총회를 언제 열지 기약조차 못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리모델링 사업은 사업계획승인까지 평균 10년 가까이 소요되는데 3년이라는 기준을 적용하는 게 말이 안 된다”며 “지역주택조합 때문에 개정된 법인데 애먼 리모델링 추진 단지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물론 서울시도 재건축 활성화를 위해 종상향 등 용적률 완화 정책을 내놓고 있다. 연내 국회 통과를 앞둔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은 용적률을 최대 500%까지 높여주는 방안 등을 담고 있다. 용적률을 거의 채워 리모델링이 불가피한 단지에 ‘재건축 길을 열어주는 법’이다. 서울에서도 노원구 상계, 양천구 목동, 강서구 가양지구 등이 인센티브를 적용받을 수 있다.
서울시도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에 대응하고 서울 내 재건축을 활성화하기 위해 대안 마련에 착수했다. 안전과 도시경관 문제 등을 감안해 리모델링보다는 재건축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게 내부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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