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국가핵심기술 유출, 이대로 둘 것인가

입력 2023-12-11 18:12   수정 2023-12-12 00:19

업무 차 대만고등검찰청 지식재산 수사부를 방문했다. 과거 대만은 기술과 영업비밀 침해 사건의 수사와 재판에서 전문성 부족 등을 지적받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08년 대만고등검찰청 지식재산 수사부가 설립됐고 최근 국가핵심기술 보호와 관련해 그 역할이 대폭 강화됐다. 대만의 국가핵심기술 보호정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이를 국가안전법에서 ‘국가안보에 관한 사항’으로 규정한다는 점이다. 대만 국가안전법 제4조는 국가안전의 수호가 사이버공간까지 확대됨을 명시했고, 국가핵심기술 침해행위를 5년 이상 12년 이하 징역과 범죄수익의 10배 이하 벌금으로 강력 처벌한다.

대만고등검찰청 지식재산 수사부의 역할은 효과적 수사를 위한 전문화와 중앙집중화다. 대만 전국에 관할권이 있고 지식재산 분야에서 오랜 수사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검사들이 장기간 근무한다. 국가핵심기술 침해 사건은 대만고등검찰청이 직접 1심 법원에 기소한다. 관련 소송 절차도 대폭 간소화해 신속성을 강화했다. 법무부 국제법무국의 지식재산 관련 정책과 국제협력 업무도 이들 검사의 역할이다. 그 결과 지식재산 분야의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과 효과적인 수사가 가능하다. 대만의 검찰 구속기간은 최대 4개월이고 중대 국가핵심기술 유출 사건 수사에 통신감청이 이용된다. 법원 구속기간도 법정형 10년 이상 범죄의 경우 횟수 제한 없이 무제한 연장 가능해 국가핵심기술 침해사건 피고인이 재판 도중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되는 일은 없다.

반면 우리나라 산업기술보호법은 첨단기술 보호에 매우 취약하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주무 부처고 산업기술보호위원회도 설치돼 있으나 유명무실하다. 정작 중요한 불법 국가핵심기술 유출은 ‘수사’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이나 관련 특별법에 의한 수사 수단도 무력하다. 국가핵심기술 유출 사건 수사에서 통신감청할 수 없다. 통신비밀보호법의 통신감청 대상에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범죄가 포함돼 있지 않아서다.

프랑스는 국가핵심기술 유출 사건은 판사의 영장 없이 국가정보기술통제위원회(CNCTR)의 통제하에 최대 4개월간 행정감청을 허용한다. 문재인 정부 때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따라 검찰의 국가핵심기술 유출 사건 수사가 불가능했다. 2022년 9월 검사의 수사개시범죄 범위에 관한 대통령령 개정으로 뒤늦게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범죄가 검찰의 직접수사 대상에 포함됐다. 최대 20일에 불과한 검찰 구속기간도 문제다. 첨단기술 유출 사건 수사에 턱없이 모자란다. 검사와 판사들의 전문성도 부족하고 대만과 같은 전담 수사조직도 없다.

최근 5년간 기술 유출로 인한 한국 기업의 피해는 25조원 규모에 이른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설계도면을 빼돌려 중국 청두에 공정기술을 유출했다가 구속된 전 삼성전자 임원은 지난달 보증금 5000만원에 보석으로 석방됐다. 피해가 최대 수조원에 이르는 첨단기술 유출 사건인데 수원지방법원의 경력 7년 차 단독판사가 담당한다. 2018~2022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된 97건 중 실형은 9건에 불과하고 무죄율은 29.9%다. 지난달 대통령실에 관계 부처가 참여하는 ‘범정부 기술유출 합동대응단’이 출범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취약한 산업기술보호 제도는 국가 간 첨단기술 협력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네덜란드, 미국, 일본과 반도체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허술한 우리의 첨단기술보호 제도 때문에 제3국 기술 유출 위험을 이유로 협력에 소극적일 가능성이 있다.

반도체 등 국가핵심기술은 국가안보에 관한 중대 사안이다. 제조업으로 먹고사는 우리나라가 첨단기술 침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국가 경쟁력 저하는 물론 국가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된다. 정부가 당장 입법 가능한 법안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국회 탓만 할 수도 없다. 국가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첨단기술보호를 둬야 한다. 더욱 강화된 범정부 컨트롤타워를 설치하고 검찰과 법원의 전문화, 통신감청을 포함한 수사 수단의 강화, 충분한 구속기간을 허용하는 특별수사재판 절차 신설 등 관련 법 개정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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