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계열사에 적용해오던 자율경영 체제를 철폐하겠다고 선언했다. 스톡옵션을 내걸고 각 계열사 경영진이 나름의 방식으로 성장을 이끌도록 독려하는 카카오식 성장 방정식이 한계에 부딪혔다고 본 것이다.
김 창업자는 11일 경기 성남 카카오 판교아지트 본사에서 임직원 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쇄신 전략을 발표했다. 김 창업자는 “확장 중심의 경영 전략을 리셋(초기화)하고 기술과 핵심 사업에 집중할 것”이라며 “숫자적 확장보다 부족한 내실을 다지면서 사회 신뢰에 부합하는 방향성을 찾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계열사마다 성장 속도가 다른 상황에서 일괄적인 자율경영 방식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며 “스톡옵션과 전적인 위임을 통해 계열사의 성장을 끌어냈던 방식에도 이별을 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창업자는 이날 간담회 첫머리 발언에서 ‘새로운’이라는 단어를 아홉 차례 사용했다. 모든 것을 다시 살피고 뜯어고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해석된다. 김 창업자는 “경영쇄신위원장으로서 의지를 갖고 새로운 카카오로의 변화를 주도하겠다”며 “카카오라는 회사 이름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각오로 임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업문화도 손질하기로 했다. 그는 “당연하게 생각해온 영어 이름 사용, 정보 공유, 수평 문화 등까지 원점에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간담회에선 당초 자율경영 기조를 도입했던 취지와 성과, 한계 등을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김 창업자는 “카카오는 스타트업이 아니라 자산 규모로 재계 서열 15위 대기업”이라며 “규모가 커지고 위상이 올라가면 기대와 책임이 따르기 마련인데 이해관계자와 사회의 기대 및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불과 몇 년 새 ‘골목상권까지 탐내며 탐욕스럽게 돈만 벌려고 한다’는 비난을 받게 된 지금의 상황에 참담함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임직원 앞에서 고개 숙여 사과하기도 했다. 카카오를 둘러싼 기대와 우려를 ‘끓는 물 속의 개구리처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런 상황까지 이르게 된 데 대해 창업자로서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카카오에 ‘창사 후 최대 위기’가 불거진 것은 지난 10월이다. 당시 ‘카카오의 SM엔터테인먼트 주가 시세조종’ 의혹과 관련해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CIO)가 구속된 데 이어 김 창업자에 대한 수사도 본격화하면서다. 업계에선 컨트롤타워가 없는 상태로 ‘문어발식 확장’을 무리하게 이어갔다는 분석이 나왔다. 카카오 국내 계열사는 현재 146개로, 2년 전보다 24.7% 늘었다.
카카오는 10월 30일부터 매주 월요일 비상경영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모색해왔다. 이 회사는 이달 세부 쇄신안을 내놓고 내년부터 본격 실행할 계획이다.
김 창업자는 “부분적인 개선과 개편으로는 부족하다”며 “내년부터는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끌어낼 것”이라고 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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