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동서발전이 11일 이사회를 열어 모회사인 한국전력의 요구에 따라 중간배당을 할 수 있도록 정관을 변경했다. 한전이 47조원에 달하는 누적 적자에 따른 한전채 발행 축소를 막기 위해 자회사에 전례 없는 중간배당을 요구하자 자회사들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이를 수용한 것이다.
▶본지 12월 9일자 A1, 3면 참조
특히 한수원은 올 들어 3분기까지 연결 기준 160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는데도 중간배당을 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예상된다. 한수원은 당초 지난 8일 이사회에서 중간배당 안건을 논의했지만 대규모 적자 상황에서 중간배당하는 것이 회사에 해를 끼치는 배임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한 차례 결정을 미뤘다가 이번에 정관 개정 안건을 통과시켰다.
한수원과 동서발전뿐 아니라 나머지 자회사도 차례로 이사회를 열어 정관을 변경할 계획이다. 서부발전과 중부발전은 13일, 남동발전과 남부발전은 14일 각각 이사회를 열 예정이다.
이들 6개 발전 자회사는 한전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한전은 6개 자회사에 올해 말까지 총 4조원가량의 중간배당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회사의 중간배당액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한전채 발행 축소 우려에…6개 자회사에 "중간배당 달라"
한전이 증권가 전망대로 올해 연간 기준 6조원대 적자를 내면 ‘자본금+적립금’은 15조원 수준에 그친다. 이렇게 되면 내년 한전채 발행한도는 75조원 규모가 된다. 한전법상 한전채 발행한도가 원칙적으로 ‘자본금+적립금’의 다섯 배 이내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말 기준 한전채 발행잔액만 79조5728억원이다. 즉 지금 상황이 지속되면 내년에 한전채 신규 발행은커녕 기존 한전채조차 상환해야 한다.
한전이 발전 자회사에 올해 말까지 최대 4조원의 중간배당을 요구한 배경이다. 한전이 이 정도 중간배당을 받으면 ‘자본금+적립금’은 19조원에 육박한다. 내년 한전채 발행한도는 95조원 가까이 되며 지금보다 추가로 15조원가량의 한전채 발행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한전이 요구한 중간배당 규모가 너무 큰 데다 자회사의 재무구조도 넉넉한 상황은 아니어서 자회사들은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한국수력원자력은 올 들어 3분기까지 160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100% 주주인 한전의 중간배당 요구가 법률상 배임이 아니라고 해도 향후 영업이나 자금조달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정권이 교체됐을 때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며 “한수원이 (지난 8일) 이사회에서 한 차례 보류 결정을 한 것 역시 이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발전 자회사들은 향후 한전에서 구체적인 배당액을 요구하면 협의를 통해 금액을 결정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이달 말 다시 이사회를 열 방침이다. 한전은 자회사별 자금 여력에 따라 배당액을 차등적으로 결정할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한전이 요구하는 최대 4조원의 중간배당은 여섯 개 자회사가 지난해 한전에 지급한 배당금(904억원)의 40배가 넘는다. 그런 만큼 중간배당 액수를 결정하는 이사회에서도 진통이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선 한전의 재무 부담을 자회사에 떠넘겨 동반 부실을 자초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전의 발전 자회사도 재무구조 악화 등으로 이미 회사채 발행을 늘리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발전 자회사 여섯 곳의 회사채 발행잔액은 38조7048억원으로 전년 대비 1조9768억원 늘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창의융합대학장은 “해외에서 현금으로 연료를 사 오는 자회사들이 영업이익에 육박하거나 이를 넘어서는 배당을 하면 당연히 채권을 발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슬기/박한신 기자 surug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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