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협 보고서는 우리 공정거래법의 목적인 ‘경쟁 촉진’과 ‘경제력 집중 방지’가 양립할 수 없고, 따라서 정부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공정거래법은 시장 집중(특정 산업에서 상위 기업의 점유율 정도)과 일반 집중(전체 경제에서 상위 기업의 비중)을 모두 제한하고 있다. 반면 미국 유럽 등 주요 선진국은 시장 집중에 주목해 유효경쟁 보호·촉진을 목적으로 경쟁법을 운용한다. 일반 집중의 경우 독과점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 한 경쟁당국이 개입하지 않는다.
보고서는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이 하나 더 생길 경우를 가정했는데, 반도체 휴대폰 가전 등 해당 산업의 경쟁은 촉진되고, 소비자 편익도 증가한다. 시장 집중 완화의 결과다. 반면 공정거래법 적용 기준이 되는 경제력 집중(일반 집중)은 커져 규제 대상이 된다. 2022년 기준 82개 기업집단의 경제력 집중도는 138.5%인데,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이 추가되면 150.6%로 급증한다는 것이다.
국내외 경쟁 환경은 공정거래법이 제정된 1981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다. 그런데도 대기업집단에 포함되면 받게 되는 국내외 계열사 공시 및 자료 제출, 일감 몰아주기 등과 관련된 규제는 지속해서 강화됐다. 갈라파고스 제도에 집착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야 할 한국 기업에 족쇄를 채우고 있는 꼴이다. 공정거래법의 목적을 경제력 집중 방지에서 경제력 남용 방지로 수정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경쟁법으로 바꾸는 게 시급하다. 경쟁 제한적 규제 개혁과 합리적 기업집단 규율을 통한 기업 부담 완화는 이 정부의 국정과제가 아닌가. 그런데도 정부와 국회 논의가 전무하다는 것이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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