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최근 대기업 임원 인사는 SK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네덜란드 방문에 함께하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서든데스(돌연사)’를 언급한 뒤 4명의 부회장을 모두 물러나게 하는, 깜짝 놀랄 만한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이런 대기업의 연말 임원 인사는 크게 ‘안정’과 ‘변화’ 두 가지 유형으로 대변된다. 그런데 임원을 너무 자주 교체하면 ‘대리인 비용’을 극대화하게 된다. 임원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도 언제든 물러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높을 경우 기업보다 본인을 위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기를 놓친 임원 인사는 ‘매몰 비용’을 극대화한다. 임원 스스로 자신이 과거에 한 의사결정에 매몰돼 새로운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그렇다. 그래서 연말 임원 인사는 그 자체로 외부에 전달하는 메시지가 크다.
이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장·차관의 잦은 교체는 대리인 비용을 높이고, 반대로 교체 시기를 놓쳐버리면 매몰 비용을 높인다. 이달 초 정부는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를 비롯해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등 6개 부처 장관 후보자를 지명했다. 또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박진 외교부 장관도 총선 출마로 인해 교체된다고 한다. 제프리 페퍼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권력은 사용하면 고갈되는 희귀하고 한정된 자원이 아니다. 무엇보다 권력은 얻은 즉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장관 후보자들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고 평가되는 분들이니 정치로 복귀하는 전임 장관들의 의사결정에 매몰되지 말고, 과감하고 속도감 있게 국민만을 위한 대리인으로서 지금까지 정책들을 되짚어보기를 바란다. 예를 들어 양평고속도로 문제는 전임 장관의 ‘백지화 의사결정’에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 새 장관은 새로운 시각으로 과감하고 속도감 있게 사안을 정리해 국토교통 현장에서 국민이 고통받고 있는 정책을 개선하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그동안 기재부가 고수해온 ‘상저하고’ 경제 기조에 대해 정치적 시각이 아닌, 국민적 시각에서 그 인식 차이를 확인하는 것으로 경제정책을 시작해야 한다. 추경호 부총리는 지난 12일 마지막 기자간담회에서 “전반적 경기 흐름은 당초 전망과 유사하다”고 밝혀, 상저하고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혹여 경제전망 수치가 그릇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국민 개개인이 현실에서 직면한 경제 상황과 그 수치가 너무나 다르다면 이를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더욱이 지난 10월 경제 통계치를 보면 생산, 소비, 투자 모두 일제히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생산 지수의 경우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 4월 이후 최대폭 감소였다. 최 후보자의 한국 경제에 대한 ‘꽃샘추위’ 진단이 정부만의 꽃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에게도 피어나는 꽃이어야 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한 윤석열 대통령은 13번째 해외 순방 중이다. 윤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과 함께 방문하고 있는 네덜란드는 이제 더 이상 ‘화훼국가’가 아니다. 디지털 경쟁력이 세계 2위인, 유럽에서 가장 디지털 접근성이 좋은 국가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제조업 기반을 붕괴시킨 ‘네덜란드병’의 치유는 정부의 정확한 국가 경쟁력 진단에서 시작됐다. 이번 신임 장관들은 정치적 논쟁에 매몰되지 말고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시작으로 대리인 비용 없는 정책을 펼쳐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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