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기업들이 정부의 서슬 퍼런 가격 인상 억제 압박을 김 한 장, 만두 한 알 줄이는 방식으로 우회하려다 또 다른 규제에 직면하게 됐다. 식품회사들은 가격과 용량, 성분을 변경할 때 소비자에게 고지해야 한다는 정부 정책에는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소비자에 대한 기업의 책무일뿐더러 프랑스, 독일 등 주요국도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다. 하지만 치솟는 생산원가를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게 틀어막아 놓고 제품 용량을 축소하는 것마저 근절 대상으로 낙인찍어 버리면 궁극적으로는 식품기업의 투자·고용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동원F&B는 올해 급등한 김 원재료 가격을 제품가에 반영하지 않는 대신 ‘동원 양반김’ 낱장 수를 열 장에서 아홉장으로 한 장 줄였다. 겨울철에 주로 생산하는 김은 올해 겨울 이상고온 현상으로 생산량이 급감해 원재료 가격이 30%가량 올랐다.
해태제과는 ‘고향만두’(415g→378g), CJ제일제당은 ‘백설 그릴 비엔나 2개 묶음’(640g→ 560g)의 용량을 줄였다. 이들 제품의 주요 원재료인 돼지고기만 해도 올해 가격이 20% 올랐다.
이에 따라 해태제과와 CJ제일제당은 각각 봉지당 만두 한 알, 소시지 두 알을 뺐다. CJ제일제당은 중량을 줄이면서 가격도 9480원에서 8980원으로 인하했지만 ‘슈링크플레이션 낙인’이 찍혔다. 식품업체 관계자는 “소비자 부담을 줄이려 여러 가지 고민을 거듭한 끝에 가격을 올리지 않고 용량을 줄이는 결정을 했다가 평판이 크게 훼손됐다”며 “원재료값과 인건비, 물류비 등 생산원가는 나날이 높아지는데 식품사 팔 비튼다고 물가가 영원히 잡힐지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이는 매출의 80% 가까이를 생산에 필요한 원재료비와 생산직 인건비, 전기·수도요금 등 제조경비로 쓴다는 뜻이다. 2020년 77.5%에서 1.2%포인트 오른 수치다. 전체 업종 평균 69.8%보다 8.9%포인트 높다.
기업별로 CJ제일제당(78.7%), SPC삼립(84.6%), 대상(74.8%), 롯데웰푸드(72.3%) 등이 2020년에 비해 매출원가율이 올랐다. 원양어업을 하는 동원수산은 매출원가율이 100%를 넘었다. 식품업계에서 ‘원가 관리의 달인’으로 통하는 오리온조차 이 비율이 2020년 57.2%에서 올 3분기 61.5%로 상승했다.
식품업계에선 정부의 과도한 간섭이 기업들의 국내 투자와 고용을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미 매일유업, SPC 파리크라상 등은 수익성 악화를 견디지 못해 최근 잇달아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식품기업들이 너도나도 해외에 생산설비를 짓는 등 해외 공략에 사활을 거는 데는 K푸드의 글로벌 인기에 더해 국내 사업 환경이 지나치게 경직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게 식품업계의 설명이다. 한 식품회사 최고경영자(CEO)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위축 속 물가 상승)이 우려되는 시기에는 정부가 기업을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몰아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게 아니라 오히려 규제를 풀고 생산 효율성을 높여 투자를 확대하도록 인센티브 정책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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