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얼마나 담배에 관대한지는 FCTC(담배규제 기본협약) 미가입국이라는 ‘팩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건강보험공단의 소개에 따르면 FCTC는 ‘담배로 인한 폐해에 국제사회가 공동 대처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유엔 역사상 가장 많은 국가가 참여한 2003년 세계보건총회(WHA)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세계 최초의 보건 관련 협약’이다.
15일 현재 FCTC 가입국은 총 166개국이다.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어지간한 국가들은 대부분 가입했다는 얘기다. 다소 과장된 비교이긴 하지만, FCTC 미가입은 1933년 만주를 무단 점령한 일본이 만주 철수 대신 국제연맹을 탈퇴한 것과 비슷하다. 일종의 담배 고립주의를 택한 셈이다.
일본인은 왜 이토록 담배에 열광할까.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설은 병영 문화 설(說)이다. 일본은 1945년 패전하기 전까지 사무라이가 지배하는 사회였다. 서구식 근대 개혁에 앞장서면서 책 읽는 사무라이로 변신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들은 일상에서 칼을 늘 곁에 뒀다.
병영 문화에서 술은 자제의 대상이지만, 담배는 권장됐다. 조선에 담배가 처음 들어온 것도 임진왜란을 통해서였다. 군대에서 기초 군사 훈련받아 본 남성들은 대부분 알 텐데, 담배는 훈련 끝에 훈련병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대가였다.
일본의 담배 사랑 덕분에 JTI(일본담배산업주식회사)는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PMI), BAT(브리티시 아메리칸 타바코) 등 글로벌 담배 제조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JTI의 지난해 매출은 2조6587억엔(약 24조3400억원)으로 KT&G(5조8514억원)의 4배 규모다.
이렇듯 담배에 관대한 일본이 담뱃세 논란으로 홍역을 치를 전망이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가 담뱃세 인상에 손을 대려 하면서 반발이 커지고 있다. ‘증세 안경’이란 별명으로 불릴 만큼 기시다 내각은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펴는 쪽으로 정책 기조를 잡고 있다. 43조엔에 달하는 방위비 충당도 급하지만, 고령화에 따른 복지 재원의 누수를 막기 위해서라도 증세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문제는 기시다 내각의 세금 정책이 오락가락, 냉·온탕을 오가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 1조 엔을 증세하기 위해 법인세·소득세·담뱃세 등을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가 10월 중·참의원 보궐선거를 앞두고 돌연 1인당 4만 엔, 약 3조엔의 소득세 감세안을 내놨다. 소득세 같은 직접세는 조세 저항에 부딪힐 수 있으니, 흡연자로부터 걷는 간접세를 주요 증세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셈법이다.
전자 담배로의 전환 유도는 FCTC에도 가입하지 않을 정도로 ‘담배 고립주의’를 택한 일본의 유일한 금연 정책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애연가들 덕분에 일본에서 전자 담배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전체 담배 이용자 중 40%가량이 연기 없는 차세대 담배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시다 내각의 담뱃세 증세가 이뤄진다면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후진적인 ‘흡연 청정국’의 오명을 쓰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오락가락 세금 정책으로 일본 정부는 인기도 국민 건강도 모두 잃을 수 있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이웃 나라의 실책이 아닐 수 없다.
여담 하나. 일본 정부의 이번 전자담배 세율 인상은 JTI의 암묵적인 지지를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JTI는 차세대 담배 시장에 늦게 뛰어드는 바람에 글로벌 담배 시장에서의 위상이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일본 내 전자담배 시장 1, 2위는 PMI와 BAT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