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보겠다고 시작한 건데"…서울 아파트 집주인들 한탄

입력 2023-12-15 07:36   수정 2023-12-15 13:12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살고 싶어서 리모델링을 추진하게 된건데. 이렇게 험난할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서울에 있는 한 리모델링 추진 단지 관계자)

리모델링 단지들이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당국이 안전진단 대상 범위를 확대하면서 ‘필로티’와 관련한 문제가 불거져서다. 1기 신도시 특별법으로 불리는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고 재건축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사업성이 떨어진 것도 원인이다.

13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지난 7월 안전진단 대상 범위를 크게 넓히는 방향으로 유권해석을 바꿨다. 서울시는 이를 근거로 리모델링할 때 필로티 설계와 이에 따른 최고 1개 층 상향에 대한 판단을 기존 수평 증축에서 수직 증축으로 바꾸기로 했다. 수평 증축은 1차 안전진단으로 가능하지만 수직 증축을 하려면 2차 안전진단을 또 받아야 한다.

이는 대부분 리모델링 추진 단지히 해당된다. 리모델링 단지들은 필로티 구조로 전용해 수평 증축하는 방식의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다. 수직 증축이 가능한 B등급 단지들은 필로티 구조 때문에 추가로 안전진단을 받아야 한다. 수직 증축 자체가 불가능한 C등급은 필로티를 포기하고 수평 증축을 하거나 다시 안전진단을 받아야 한다. 그만큼 비용과 시간이 추가로 소요될 전망이다.


정부는 리모델링 단지들의 '안전'을 더욱 꼼꼼하게 보겠다는 방침이지만, 추진하는 단지들 입장에서는 사업 발목을 잡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서울시리모델링주택조합협의회(서리협) 관계자는 "서울에서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 대부분이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고 보면 된다"면서 "사업 지연은 물론 비용 상승도 예상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러한 가운데 재건축 사업을 막고 있던 '대못'이 하나둘 뽑히자 리모델링 단지 내에서도 술렁이고 있다. '리모델링 대신 재건축사업을 추진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이유에서다.

지난 8일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과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금 면제 기준을 확대하는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노후한 1기 신도시와 지역 구도심을 정비할 때 ‘패스트트랙’을 적용하는 내용을 비롯해 조합원 부담금 면제 기준의 상향 등이 담겼다. 대통령 공포 절차를 거쳐 내년 4월께 시행될 예정이다.

서정태 서울시리모델링주택조합 협의회 회장은 "재건축과 리모델링은 태생과 추진방식이 전혀 다른 사업"이라면서 "서울 내에서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들은 종 세분화 이전의 단지들이 대다수라 재건축 유도 정책이 나오더라도 사업성이 좋지 않아 포기하는 단지들이 많다"고 말했다.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는 사업성 자체가 다르다는 주장이다. 쉽게 설명해 용적률이 400%인 아파트에서 이 기준을 500%까지 올려준다고 해도 재건축을 시행할 경우 요구되는 기부채납, 임대주택, 커뮤니티시설 등을 맞추려면 거주하고 있는 집의 크기가 줄어들고 분담금이 늘어난다. 사업성이 나오지 않기에 재건축으로 사업을 틀기에는 무리라는 얘기다.

서울에 있는 한 리모델링 추진 단지 조합장은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이 통과한 이후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 '재건축 사업은 하지 못하는 것이냐'는 질문이 많이 나온다"면서 "사업을 추진하기 전 재건축과 리모델링 사업을 두고 충분히 검토를 통해 리모델링으로 추진하자고 결정을 했음에도 이런 얘기가 나오니 힘이 빠진다"고 전했다.

전문가들도 당분간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은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재건축 사업과 관련한 규제 완화와 리모델링 단지들에 대한 안전진단 강화 모두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에게는 악재”라면서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어 새로운 정책 동력이 나오기 어렵다는 점, 계속 오르는 공사비 등 건설업계를 둘러싼 부정적인 환경도 이들 단지에겐 치명적인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비업계 관계자도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게 되면 재건축 만큼의 일반 분양 물량이 나오거나 혹은 가구수를 일정 수 이상 추가하는 등이 제한되기 때문에 재건축 단지들이 기부채납 등을 통해 받는 인센티브도 받기가 어렵다"며 "일단은 시장 상황을 지켜보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리모델링 사업은 준공 15년이 지난 단지면 추진이 가능하다. 재건축 단지보다 연한이 짧다. 추진위원회 설립조건이나 사업추진 조건이 없다. 기반시설 기부채납, 임대주택 건립, 초과 이익 환수 등도 없다. 추진 기간은 평균 6~7년으로 재건축이 12~15년 걸리는 것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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