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플랫폼 기업들을 사전 규제하는 가칭 ‘플랫폼 경쟁촉진법’ 도입을 추진하기 위해 기획재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계 부처에 내용 검토를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윤석열 정부가 공약했던 플랫폼 자율규제 원칙과 반대로 네이버 카카오 등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로 규정해 규제하는 법안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공정위가 추진하는 법안 내용은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발의한 '온라인 플랫폼 독점규제에 관한 법률안'과 유사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 전망이다.
해당 방안에 따르면 공정위는 △매출액, 이용자 수, 시장점유율 등 정량·정성 요건을 고려해 △소수 핵심 플랫폼을 ‘지배적 플랫폼사업자’로 사전지정하고 △멀티호밍 제한, 최혜대우, 자사우대, 끼워팔기 등 4가지 행위를 금지하며 △공정거래법 대비 상향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멀티호밍 제한’이란 자사 플랫폼 이용자에게 타사 플랫폼 이용을 금지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구글이 게임사들에 구글플레이를 통해서만 게임을 출시하라고 요구하는 행위다. ‘최혜대우’란 자사 플랫폼 이용자에게 타사 플랫폼보다 유리한 거래조건을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자사우대 금지는 네이버쇼핑에서 네이버페이를, 카카오모빌리티 등에서 카카오페이로 결제수단을 설정하는 식의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다.
당초 공정위는 현 정부 공약과 반대된다는 점과 전문가들의 반대로 규제를 보류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거대 플랫폼을 지정해 사전에 금지하는 '메가톤급 규제'를 재추진하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온라인 플랫폼 독점규제에 관한 법률안은 △시가총액 30조원 이상 △직전 3개 연도 매출액 3조원 이상 △직전 3개연도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 월평균 1000만명 이상 또는 국내 이용사업자 수 월평균 5만개 이상 사업자를 공정위 심사를 거쳐 ‘시장 지배적 온라인 플랫폼’으로 지정하도록 한다.
이들 사업자들은 멀티호밍 제한, 데이터 이동·접근 제한, 최혜대우 요구 등 행위가 금지되고 과징금은 매출의 10%까지 매길 수 있다. 올해 매출이 약 10조원으로 예상되는 네이버는 조 단위에 육박하는 과징금이 매겨질 수 있다는 얘기다.
공정위는 플랫폼 경쟁촉진법에 기업들의 항변권을 보장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사전규제가 윤석열 정부의 당초 공약과 반대된다는 점, 토종 플랫폼 기업들의 성장을 원천봉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제기된다.
올 초부터 약 6개월 간 운영된 온라인 플랫폼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한 전문가들 또한 사전규제안에 대부분 반대했다. 당시 TF에 참여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내 플랫폼들이 여전히 성장해야 하는 상황에서 AI 경쟁 시대에 이들의 손발을 묶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한다.
온라인 플랫폼 사전규제 법안은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과도 유사하다. 하지만 DMA의 경우 그동안 자체 플랫폼 기업을 육성하지 못한 EU가 미국 기업들에 징벌적 규제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통상 마찰도 우려된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해외 플랫폼이 규제 대상에 포함될 전망이어서다. 미국 씽크탱크인 전략국제연구소(CSIS)는 올 들어 “동맹국인 한국이 미국 기업을 겨냥한 DMA같은 법을 도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