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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은 매년 12월이면 스크루지가 됐습니다. 2021년 내내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고 했다가 그해말 "더 이상 그런 말을 하지 않겠다"며 본인의 실언을 갑자기 주워 담았습니다. 지난해엔 잭슨홀 회의(8월)에 이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인하는 시기상조"라며 산타랠리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연말마다 강경 매파로 돌아서던 파월 의장이 이번엔 정반대 행보를 보였습니다. 예고편 하나 없이 돌연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 선언을 했습니다. 시장의 설레발을 제어하느데 여념이 없던 파월 의장이 맞장구를 넘어 시장을 자극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습니다.
Fed 인사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동안 파월보다 더 비둘기파라고 자처하던 구성원들조차 "파월이 너무 나갔다"며 수습에 나서고 있습니다. 사실상 연말 휴가에 들어간 Fed 인사들 중 일부가 이번주에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파월 의장 발언의 톤다운을 시도하며 완급 조절에 나설 수 있습니다.
"이제 금리 인하에 대해 논의할 때"라는 파월 발언으로 시장은 이미 금리 인하 시기만 주시하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처럼 금리 인하 시점을 앞당기는 곳도 늘고 있습니다. 오는 22일에 나올 개인소비지출(PCE)이 둔화하는 모습을 보이면 피벗에 대한 기대는 더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파월이 쏘아 올린 산타 랠리를 중심으로 이번주 주요 일정과 이슈를 살펴겠습니다.
'응답하라 1994' 시절 금리인하
Fed의 금리 인하 역사를 보면 피벗 시점을 가늠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2000년 이전은 현재 기준금리(연 5.25~5.5%)와 비슷하거나 높았다는 점에서 참고해볼만 합니다.
1994년에도 지금처럼 미국 경제는 강했습니다. 호경기를 뛰어넘어 과열 조짐을 보였습니다. 미국 경제가 연 4% 이상씩 성장하던 때입니다. 그러자 Fed는 1994년 2월부터 1995년 2월까지 1년 간 7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3%포인트 올렸습니다. 연 3%였던 기준금리는 6%까지 올랐습니다. 현재와 비슷하게 채권금리도 폭등했습니다.
금리를 올린 뒤 1995년부터 인플레이션이 둔화하고 노동시장이 움츠러들었습니다. 그러자 앨런 그린스펀 Fed 전 의장은 그해 7월부터 기준금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금리 동결부터 인하까지 5개월이 걸렸습니다.
이후 그린스펀 전 의장은 기준금리를 6.0%에서 5.25%까지만 내렸습니다. 금리가 떨어지자 증시가 활활 타올랐기 때문입니다. S&P500 지수는 1995년 한 해에만 33% 상승했습니다.
다시 경제가 살아나자 기준금리를 올렸다가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금리를 소폭 내렸습니다.
자산 시장을 두고보면 현재는 1999년과 2000년 초와 유사합니다. 이른바 '닷컴버블'이 있던 때입니다.
증시가 달아오르자 Fed는 1999년 6월부터 2000년 5월까지 기준금리를 6회 인상합니다. 1년간 금리 인상으로 증시가 폭락할 조짐을 보이자 Fed는 이내 통화정책 방향을 바꿨습니다. 당시 Fed는 동결 후 8개월만에 움직였습니다. 2001년 1월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렸습니다. 이후 2003년 6월까지 금리를 인하했습니다. 6%였던 기준금리는 1%대로 떨어졌습니다.
긴축 강도 비슷한 2006년
Fed가 처한 상황만 보자면 현재는 2006년과 가장 비슷합니다. 긴축 기간이나 금리 인상 횟수 측면에서 봐도 유사합니다. Fed는 2004년 6월부터 2006년 6월까지 17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올렸습니다. 1%대였던 기준금리를 연 5.25%(상단기준)까지 올렸습니다. 기준금리 고점이 지금과 거의 같습니다.
인플레 맷집도 현재 수준에 버금갔습니다. 긴축에도 인플레가 잦아들지 않아 Fed는 15개월간 금리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금리를 일사천리로 내리지 못한 건 여러 이유가 있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개선되긴 해도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연준 목표치(2%)를 웃도는 상황이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보다 높은 상황에서 금리를 내릴 경우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돼 결과적으로 차후에 금리를 더 높게 올릴 가능성이 우려됐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이 현재와 유사해 이번에도 Fed가 가능한 신중하게 움직일 것이란 전망이 있습니다.
반대로 금리 인하가 너무 늦으면 부작용도 있습니다. 2007년 이야기입니다. Fed 높은 금리 수준을 유지하다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목전에 둔 2007년 9월에야 금리를 내렸습니다.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Fed는 기준금리를 1년 4개월 동안 5.0%포인트 낮춰 제로금리로 바꿨습니다.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연방은행 총재는 "Fed가 2006년 상황의 데자뷔를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금리 인하가 너무 늦으면 더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내년 3월 vs 내년 3분기
결국 중요한 건 금리가 꺾이는 시기입니다. 내년 언제부터 기준금리가 떨어질 것이냐가 가장 큰 관심사입니다. 1990년대 이후 금리 상승기만 놓고 보면 동결 후 금리를 인하하는데 7~8개월이 걸렸습니다. 2000년대로 범위를 줄이면 그 기간은 8~9개월로 늘어납니다.
역사적 평균만 생각해보면 시장에서 확산 중인 내년 3월 금리 인하설이 설득력을 얻습니다. 올해 7월 이후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아 내년 3월이 정확히 동결 후 8개월이 되는 시점입니다. 12월 FOMC 직후 골드만삭스가 금리 인하 시점을 내년 3분기에서 내년 3월로 당긴 것도 3월 인하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UBS는 이전부터 내년 3월을 통화정책 분기점으로 찍고 있습니다. 금리 선물 시장에서도 3월에 금리를 인하할 확률을 70% 안팎으로 보고 있습니다.
긴축 후 기준금리 수준만 보면 지금은 1995년과 비슷합니다. 당시엔 동결 후 5개월 만에 금리를 내렸습니다. 그 정도의 긴축강도에서 시장이 5개월을 버티지 못했다는 얘기입니다.
금리 인상 폭이 현재와 가장 비슷한 건 2006년이었습니다. 인플레 끈적끈적하게 잡히지 않은 것도 지금과 유사했습니다. 결국 15개월 간 동결한 뒤에야 금리를 인하했습니다.
이번은 41년만에 불어닥친 최악의 인플레이션이라는 측면에서 어느 때와도 비교하기 쉽지 않습니다. 전례없는 코로나19로 돈풀기 강도도 사상 최대였습니다. 그 여파로 고강도 긴축에도 미국 경제는 잘 버티고 있습니다. 초과저축과 뜨거운 노동시장이 강철 체력의 근원입니다.
이 때문에 긴축 속도도 1980년대를 제외하고 이번이 가장 빨랐습니다. 하지만 고강도 긴축으로 인해 어느 순간 미국 경제가 식어버릴 것이라는 우려가 계속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PCE가 산타랠리 분위기 결정 전망
Fed가 역사적 평균을 따를 것인가. 2006년처럼 가급적 오래 버틴 뒤 피벗의 길을 갈 것인가. 두 개의 갈림길 중 어느 쪽으로 가까울 지는 파월 의장의 '18번'인 데이터로 결정될 전망입니다.
단기적인 분위기는 22일 발표되는 11월 PCE에 달렸습니다. 올해의 마지막 데이터이자 파월 의장이 비둘기로 돌변한 뒤 처음 나오는 데이터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패널들은 근원 PCE가 전년 동기 대비 3.2% 상승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전월 대비 상승률 전망치는 0.1%입니다. 클리블랜드 연방은행의 실시간 인플레 예측 플랫폼인 '인플레이션나우 캐스팅'은 각각 3.43%, 0.26%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10월 상승률(3.5%, 0.2%)과 비교하면 낮거나 비슷합니다.
전년 동기대비 헤드라인 PCE 상승률은 10월 3%에서 11월 2.8%로 둔화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Fed 목표치(2%)보다 높지만 2021년 3월 이후 2년 8개월 만에 2%대 물가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Fed 인사들은 이번 주부터 사실상 연말 휴가에 들어갑니다. 보통 FOMC 직후 각종 연설을 통해 시장과 소통하지만 이번엔 연말이라 공식 일정이 일절 없습니다. 일부 인사들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본인들의 얘기를 할 수 있지만 파월 의장이 인터뷰에 나설 확률은 낮습니다. Fed 뿐 아니라 워싱턴 대부분의 기관들도 사실상 문을 닫습니다. 연말이 만든 정적 속에 희한한 '블랙아웃' 기간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부 Fed 인사들의 발언과 PCE를 주목하면서 산타랠리가 이어지는 지를 지켜보는 게 이번주 관전포인트가 될 전망입니다.
아래 영상을 보면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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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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