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엘리트가 총력을 기울여 유학에 ‘올인’했던 조선에서 학습의 결실이 이처럼 초라한 이유는 무엇일까. ‘책 속에 천종의 봉록이 있다(書中自有千種祿)’(진종황제 ‘권학문’)는 문구에 충실하게 출세를 위한 수험 공부에만 집중한 탓이 클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부실한 기초라는 부끄러운 실상은 허례허식에 대한 집착과 편 가르기, 줄 세우기로 가렸다. 노론, 소론, 벽파, 시파, 완론, 준론 식으로 집권층의 패거리는 세분돼 갔다. 이렇게 너와 나를 가르는 기준은 ‘근본 따지기’였다. 실력과 내용보다는 핏줄이 중요했고 부모가 누군지, 스승이 누군지, 자란 곳이 어디인지 따위가 우선시됐다.
민망한 과거를 되짚어본 것은 요즘도 옛 치부가 오버랩되는 일을 곳곳에서 마주하기 때문이다. 수험생 시절부터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로 시작해 ‘협수용강 을평성대’까지 줄줄 읊으며 서열화를 체화하는 시대에 중소기업은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나도 일할 사람 구하기가 녹록잖다. 한 중견기업 대표는 “어차피 편하게 돈 벌려고 공부하는 것인데 많이 배운 학생이 중소기업에 오겠냐”며 학교 불문·전공 불문으로 신입직원을 뽑는 이유를 자조적으로 설명했다.
연일 ‘못난이 경쟁’에 여념이 없는 정치권도 ‘근본 따지기’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동네다.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친노와 반노, 친이와 친박, 친문을 거쳐 오늘날에도 법조인이 주류를 이룬 여당, 운동권이 실권을 거머쥔 야당에선 수시로 뿌리를 드러내는 선명성 경쟁이 벌어진다. 소위 성골·진골 운동권과 검찰 내 요직을 독식했던 엘리트 검사들은 ‘친명’, ‘개딸’과 ‘윤핵관’, ‘찐윤’으로 이어졌다. 그리곤 기업 경영 환경 개선이나 복지 개선 같은 본질적인 문제는 도외시한 채 그들만의 ‘험지’와 ‘꽃길’을 논한다.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 됐다고 흔히 얘기한다. 하지만 진정한 도약은 대대적인 사고의 전환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금이라도 시각을 바꿔, 저마다의 분야에서 경력과 전문성을 쌓으며 묵묵하게 기초를 갈고 닦는 기업과 개인을 주목해야 한다. ‘근본’을 따질 게 아니라 ‘기본’을 제대로 갖춰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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