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고용 관계 내에서 육아와 모성을 보호하는 주요 법령으로는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고용보험법 등이 있습니다. 이 중 남녀고용평등법은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직장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전반적인 틀을 제공하는 법률입니다. 이러한 취지에서 동법은 난임 치료 휴가, 배우자 출산 휴가, 육아휴직, 육아 기간 중 근로시간 단축, 직장 내 어린이집의 설치, 가족 돌봄 휴가와 같은 구체적인 의무들을 규정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구체적인 의무 이외에도, 동법 제19조의5는 사업주가 만 8세 이하 자녀를 양육하는 근로자의 육아를 지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이러한 노력 의무는 '업무 시작 및 종료 시간의 조정, 연장근로 제한, 근로시간 단축 기타 육아를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포함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법문의 표현이 사업주의 '노력 의무'로 규정되어 있어 이러한 의무가 법적인 의무인지, 구체적으로 어떠한 의무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그동안 명시적으로 판단한 판례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이 이에 대하여 최초의 판례를 내놓아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대법 2019두59349, 2023-11-16 선고). 사안의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근로자 B씨는 1세와 6세 자녀를 둔 워킹맘으로, 고속도로 관리를 위탁받은 용역업체에서 8년 9개월 동안 근무한 근로자입니다. 2017년 4월에 용역업체가 변경되면서, 기존 근로자들의 고용이 새로운 용역업체 A사로 승계되었고, B씨는 이 과정에서 A사와 수습기간 3개월을 두며, 이 기간 중 문제가 있는 경우 A사가 B씨의 본채용을 거부할 수 있다는 새로운 근로계약을 체결했습니다. B씨의 근무 조건은 현장직의 조건을 따르는데 이에 의하면 새벽근무와 공휴일 근무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B씨는 A사로부터 받은 새벽 근무와 및 공휴일 근무 지시에 불응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A사는 근태 항목에서 B씨에게 감점을 부여하고 본채용을 거부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B씨는 부당해고구제신청을 하였고,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이것이 부당해고로 인정되자 A사는 중앙노동위원회의 결정을 취소하기 위한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소송은 1심에서 B씨가, 2심에서 A사가 승소하는 등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대법원에 계류되었습니다. 대법원은 어떻게 판단을 했을까요?
대법원은 B씨에게도 새벽 근무 및 공휴일 근무 의무가 부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므로 A사가 B씨에게 공휴일 근무를 지시한 것 자체는 부당하지 않다고 전제하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사업주는 육아기 근로자에게 일?가정 양립을 위한 배려의무를 부담하는데, A사가 어린 자녀를 양육하는 B씨에 대해 배려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보았습니다. 결과적으로 B씨가 공휴일 근무를 하지 않은 것을 이유로 근태 항목에서 감점을 받아 본채용을 거부당한 것이므로, A사의 본 채용 거부는 합리적 이유가 인정되기 어렵다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조금 더 뜯어보면 아래와 같은 부분이 눈에 띕니다.
먼저, A사는 B씨의 공휴일 근무가 필요한 이유로 '다른 근무자(영업주임)의 순찰시간 및 식사시간업무 공백을 메우기 위함'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순찰·식사시간의 공백은 B씨의 근무시간을 조절하거나 B씨가 새로운 근로조건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부여하는 등의 방법으로 보완할 수 있었을 텐데, (참고로 B씨가 종전의 용역회사에서 일할 때에는 공휴일 근무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배려가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A사에는 B씨와 같은 교대제 근무자 외에도 다른 근무 형태의 직원이 있었으므로 영업주임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근로자가 부족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B씨는 업무수행능력 면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벽 근무 불이행 및 공휴일 무단결근을 이유로 전체 점수 중 절반에 가까운 감점을 당하여 본채용을 거절당한 점도 지적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B씨가 종전의 용역회사에서 일할 때는 공휴일 근무를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수년간 지속하여 온 근무형태를 갑작스럽게 바꾸어 보육시설이 운영되지 않는 공휴일에 매번 출근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자녀 양육에 큰 저해가 되는 반면, B씨에게 공휴일 근무를 지시하여야 할 회사의 경영상 필요성이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하여 양 법익을 비교 교량하는 태도를 보인 점도 주목됩니다.
이 판결은 사업주에게 소속 근로자에 대한 일·가정 양립 지원을 위한 배려의무가 인정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러한 배려의무의 구체적 내용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을 명시한 첫 판결입니다. 즉, 사업주가 부담하는 배려의무의 내용은 근로자가 처한 환경, 사업장의 규모 및 인력 운영의 여건, 사업 운영상의 필요성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해 개별 사건에서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하였으며, 실제 사례에 있어 사업주의 경영상 필요성과 자녀 양육을 해야 하는 근로자의 육아 저해의 정도를 비교하여 어느 쪽이 더 큰지 비교 교량하는 태도를 취한 것입니다.
이 판결로 대표되듯이, 직장 내에서의 육아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법적 기반은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업주가 소속 근로자의 일과 가정 생활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기여할 의무 또한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기업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여 법적 요건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근로자의 복지 향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육아를 하면서도 직장 생활을 조화롭게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양성 평등을 촉진하는 직장 문화를 형성하는 데 있어 기업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입니다.
김은지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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