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찾았다가 1시간 만에 식물인간…법원 "5.7억 배상"

입력 2023-12-19 10:56   수정 2023-12-19 11:43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식물인간이 된 40대 남성이 소송에서 일부 승소해 병원으로부터 5억7000만원을 배상받게 됐다.

인천지법 민사14부(김지후 부장판사)는 식물인간 상태인 A씨(43)가 후견인을 통해 모 대학병원을 운영하는 학교법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고 19일 밝혔다.

평소 신장이 좋지 않았던 A씨는 4년 전인 2019년 4월 아버지와 함께 인천에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그는 1주일 전부터 하루에 10차례 넘게 설사하고, 이틀 전부터 호흡이 어렵다는 등 증세를 설명하며 "2013년 폐렴으로 입원한 적이 있고, 신장 치료를 위해 조만간 혈액 투석도 시작한다"고 의료진에 미리 귀띔했다. 당시 응급실에서 잰 A씨의 체온은 40도였다. 분당 호흡수는 38회로 정상 수치(10~12회)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이에 의료진은 호흡수가 정상이 아닌 A씨가 의식마저 잃어가자 마취 후 기관삽관을 했다. 인공 관을 코나 입으로 집어넣어 기도를 여는 처치법이었다. 곧바로 A씨에 인공호흡기도 부착했으나 5분도 지나지 않아 심정지 상태가 됐다.

이어진 병원 응급 구조사와 의료진의 심폐소생술을 통해 다행히 심장 박동은 살아났으나 A씨는 '저산소성 뇌 손상'으로 반혼수 상태에 빠졌다. 응급실을 걸어서 들어간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은 때였다. 현재까지도 그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다.

앞서 2020년 5월 후견인인 A씨의 아버지는 변호인을 선임한 뒤 총 13억원을 배상하라며 대학병원 측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과정에서 변호인은 "환자가 의식이 있는데도 의료진이 불필요한 기관삽관을 했다"며 "기관삽관을 제대로 했는지 확인하지 않는 등 경과 관찰 의무도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지후 부장판사는 "A씨에게 위자료 등 명목으로 5억7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학교법인 측에 명령하면서 대학병원 의료진이 기관삽관을 하는 과정에서 경과를 제대로 관찰하지 않았다는 A씨 주장을 받아들였다.

김 판사는 "당시 의료진은 신장 기능이 떨어진 A씨 상태를 고려해 일반 환자보다 더 각별하게 주의해 호흡수·맥박·산소포화도 등을 기록하며 신체 변화를 관찰했어야 했다"며 "그런데도 의료진은 기관삽관을 하기로 결정한 후부터 심정지를 확인한 15분 동안 A씨의 상태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하거나 기록하지 않았다. 이런 과실과 A씨의 뇌 손상 사이에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당시 A씨의 호흡수가 증가하고 의식도 점차 떨어지는 상황에서 기관삽관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며 "병원 의료진이 A씨의 심정지 이후 뇌 손상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한 점 등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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