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에서 동성 커플도 사제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공식 승인했다. 동성 간 결합을 금기시해오던 가톨릭 교회에서는 파격적인 조치다. 다만 교황청은 이 같은 축복이 가톨릭 교회에서 부부가 받는 혼인성사와는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지난 18일 '간청하는 믿음(Fiducia supplicans)'이라는 제목의 교리 선언문을 발표했다. 동성 커플이 원한다면 가톨릭 사제가 이들에 대해 축복을 집전해도 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선언문에 서명해 공식 승인했다.
선언문은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은 교회의 정규 의식이나 미사 중에 집전해서는 안되고, 혼인성사와는 다르다는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동성 커플을 배제해왔던 가톨릭 교회의 전통과는 다른 역사적 결정이다.
교황청은 2021년 2월 '동성 결합은 이성 간 결혼만을 인정하는 교회의 교리를 훼손하는 탓에 축복할 수 없다'는 교리를 선언한 바 있다. 새로운 선언문을 통해 옛 선언은 대체됐다.
신앙교리성은 "(동성) 축복이 모든 규정에 어긋난 상황을 승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느님이 모든 이를 환영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제는 축복을 받아 하느님의 도움을 구하려는 모든 상황에 처한 이에게 교회가 다가가는 것을 방해하거나 막아선 안된다"며 "궁극적으로 축복은 신앙을 키우는 수단을 제공하는 일이므로 양육돼야 하지, 저해돼선 안된다"고 덧붙였다.
이 선언문을 발표한 빅토르 마누엘 페르난데스 신앙교리성 장관(추기경)은 "축복받을 수 있는 범위를 넓힌 것은 진정한 발전이자 축복의 목회적 의미에 대한 명확하고 획기적인 기여"라며 "교황 성하의 목회적 비전에 기반한 결정"이라고 전했다. 다만 "이번 선언이 (이성 간) 혼인성사와 혼동될 수 있는 예배의식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결혼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 교리를 수정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교리선언문은 "(동성 커플) 축복의 형식이 혼인성사의 정식 축복과 혼동을 유발하지 말도록 교회가 이를 의식으로 규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마누엘 추기경은 "결혼에 대한 교회의 오랜 가르침을 변경하거나 축복의 지위를 입증하지 않고도 '비정규적 상황'에 있는 커플과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의 가능성을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톨릭 교회에서 동성애와 동성 결혼은 '뜨거운 감자'다. 전통적으로 이성 간 결합만을 인정해왔는데, 교회 안팎에서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와서다.
가톨릭 교회에서 개혁파로 분류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선출된 이후 가톨릭 교회의 근본적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서도 성소수자(LGBT,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를 교회에서 소외하지 않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지난달 교황청은 성전환자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세례성사를 받을 수 있다는 교리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보수적 가톨릭계의 비판과 반대가 예상되지만 교황청은 "누구든 축복에서 배제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선언문은 "이런 식으로 모든 형제 자매들은 교회 안에서 (…) 언제나 사랑받고, 모든 것에 불구하고 언제나 복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끝맺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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