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드라마에 역전 당한 日드라마 "한국 배우자"②에서 계속 일본이 "이제는 한국 드라마를 배우자"며 개최한 제16회 아시안 TV드라마 컨퍼런스(ATDC)는 일본 드라마 제작자와 작가들의 성토장이었다.
일본 드라마의 질적 하락을 여실히 보여주는 통계가 순수 창작물과 원작 만화와 소설을 각색한 드라마의 비율이다. 올해 일본에서 제작된 드라마 296편 가운데 순수 창작물은 34%에 그쳤다. 나머지 66%는 원작 만화와 소설을 각색한 드라마였다. 한국은 반대다. 68%가 순수창작물이고 만화와 소설 원작 드라마는 33%에 불과했다.
이게 왜 문제일까. 인기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를 쓴 노기 아키코 작가는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대부분인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일본 드라마가 재미없어 진 건 2010년 무렵부터다. 그때만 해도 '꽃보다 남자', '노다메 칸타빌레', '블랙잭을 부탁해'와 같은 만화들이 엄선돼 드라마로도 재밌게 만들어졌다. 그때까지는 정상이었다."
하지만 드라마화할 만화가 고갈되면서 이제 막 그리기 시작한 만화조차 입도선매의 대상에 오른다고 노다 작가는 지적했다.
"앞으로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될 지도 모르는데 드라마 프로듀서(PD)들은 만화 출판업계에 '얘기 되는 거 없어요?'라고 묻는다. 어지간한 만화는 모두 드라마로 만들어지다보니 냉정히 말해 '이런 만화까지 드라마화할 필요가 있어? 차라리 그럴 바에야 순수 창작물을 만들지' 싶을 정도로 수준 낮은 만화까지 드라마화하고 있다. 이건 PD들의 태만이다."
그 사이 한국 드라마는 일본 드라마를 멀찍히 앞서 나가고 있다는게 노기 작가의 평가다. "최근 한국 드라마는 압도적인 예산을 바탕으로 최신 기재를 투입해 찍기 때문에 영상이 고급스럽다. 힘 있는 연출가가 잔뜩 있어서 세계적인 수준의 드라마를 찍고 있다."
원작 만화에 의존해 손쉽게 드라마를 만드는 트렌드는 또다른 경쟁력 저하의 요인이 됐다. 드라마 PD들이 순수 창작물의 드라마 만드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노기 작가는 "순수 창작 드라마를 기획하고 만드는 수고를 들일 필요 없이 만화책을 던져 주면서 '이거 한번 읽어봐'라면 끝이다보니 PD의 업무가 드라마에 쓸 만한 만화를 찾는 일로 변했다"며 "이들 밑에서 성장한 젊은 PD들도 순수 창작물을 제작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설명했다.
드라마를 산업으로 보는 한국과 오락거리로 취급하는 일본의 접근법도 차이를 낳았다. 영화 '도쿄타워'의 감독 미나모토 다카시(사진)의 말이다.
"일본은 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진 가운데 두 차례의 큰 자연재해를 겪었다.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으로 간사이 지역의 도심이 괴멸됐고, 2011년에는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했다. 이렇게 되자 엔터테인먼트는 나중 문제라는 인식이 생겼다. '지금이 엔터테인먼트 신경 쓸 때냐, 경제 부흥이 먼저지' 하는 식이다."
"한국은 정부가 엔터 산업을 성장산업으로 키웠다. 거기서 차이가 생겼다. 큰 일이 났을 때 엔터 산업은 후순위라는 일본인의 감각과 엔터 산업으로 세계로 나아가 돈을 벌어들인다는 한국의 인식 차이다."
"특히 한국이 최근 세계적으로 눈부시게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도 이제서야 겨우 깨닫기 시작했다. 인간에 있어서 엔터산업은 필요한 것이다. 자연재해로 많은 사람이 죽어도 뒷전으로 미뤄둘 우선 순위가 낮은 산업이 아니라 재난 극복의 희망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K드라마에 역전 당한 日드라마 "한국 배우자"④로 이어집니다.
이시카와 나나오=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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