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전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지난 5일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의 물가 대응정책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기업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가격 통제는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다. 지난 6월 추경호 부총리가 라면업계를 겨냥해 가격 인하 압력을 넣은 게 시작이다. 지난달엔 물가 대응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의 실장급 간부가 아이스크림(빙과)업계 대표 기업인 빙그레를 찾아가 경고장을 날렸다. 이 간부의 방문에 앞서 농식품부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빙그레는 올해 초와 10월에 원·부자재 조달 비용 증가, 인건비 상승 등을 이유로 메로나, 투게더 등의 아이스크림 가격을 인상했다”고 정조준했다. 정부는 빵 우유 소고기 돼지고기 등 28개 품목 가격도 매일 점검하고 있다.
식품업계에선 “해도 너무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높아진 원재료비와 인건비를 고려하면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익이 조금이라도 남아야 미래를 위한 투자도 있다는 지적 또한 나온다.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이들 기업은 가격 인상 계획을 잇달아 철회하고 있다. 오뚜기 풀무원 CJ제일제당 등 식품업체가 최근 제품 가격 인상 계획을 접었다.
정부 내에서도 이런 가격 누르기가 지나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었는데 1만달러 시대 발상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라면 가격 인하 요구를 예로 들며 “라면의 수출 비중이 40%나 되는데 이런 소식이 전해지면 해외 소비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며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인정받기까지 무수한 노력을 기울였을 텐데 가격 통제 정책이 기업의 신뢰도를 갉아먹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말 안 듣는 기업’을 움직이게 하려는 시도는 구시대적이다. 이런 통제는 가격을 유지하는 대신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 꼼수로 번지게 될 뿐이다. 최 후보자는 1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우리 경제가 유례를 찾기 어려운 복합위기를 극복하고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선 여야의 초당적 이해와 협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4만달러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선 구조개혁 등을 통해 역동경제를 창출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 전에 경제정책을 만들어야 할 정부의 사고방식이 과거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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