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영상제작을 전공하는 김유랑 씨(한라대학교 영상제작학과 1학년)의 부모님은 강원도 영월 폐광지역에서 정육식당을 운영한다. 코로나19 이후 식당 매출이 크게 줄어 걱정하던 부모님을 지켜본 유랑 씨는 전공을 살려 가게 홍보 영상을 만들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용에 능숙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강점을 살려 지역 인터넷 커뮤니티나 맘카페를 중심으로 온라인 마케팅을 했다. 어린 딸이 부모님의 가게를 살려보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했는지 손님이 하나둘씩 늘기 시작했다. 이 작은 성과가 유랑 씨의 진로에도 영향을 줬다.
“영상 마케터가 되고 싶어요. 영상 콘텐츠를 제작해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계정을 운영하는 마케팅을 해보려 해요. 활동해보고 싶은 영역은 스포츠 분야입니다. 가족들이 모두 ‘스포츠 광’이거든요. 저도 어렸을 때부터 야구장, 농구장 등 각종 스포츠 경기를 보며 자라서 그런지 스포츠가 좋아요. 올해 야구장을 다니며 ‘떼창’(함께 부르는 노래) 응원도 많이 했어요. 롯데 자이언츠 팬이거든요.”
유랑 씨는 올해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로부터 ‘우아한 사장님 자녀 장학금’을 받았다. 이 장학금은 김봉진 전 의장의 기부로 마련된 200억원대 ‘우아한 사장님 살핌기금'에서 100억원 규모로 운용되는 프로그램이다. 추가 법인기금 기부(2억원)도 있었다. 장사를 하는 부모님을 도우면서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는 유랑 씨의 사연이 장학생으로 뽑히는 데 영향을 줬다. 우아한형제들은 2022년부터 외식업주 자녀들 619명에게 36억원을 지원했다. 5년 동안 총 100억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게 된다.
고등학생의 경우 연간 학업 지원금 300만원을, 대학생은 연간 학업 지원금 400만원 또는 주거비 지원금 6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지원 자격은 부모님이 1년 이상 외식업을 운영하고 있으면서 기준 중위소득 130% 이하(3인 가구 기준 월 소득 576만5261원 이하)인 고등학생 및 대학생 자녀다. 학자금 지원구간 6구간(702만1253원 이하) 이하에 해당하는 대학생도 대상이 된다. 배달의민족 입점업주가 아니어도 외식업주 가정의 자녀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유랑 씨는 최근 서울 송파구 우아한형제들 본사 사옥에서 한 인터뷰에서 “우아한 사장님 자녀 장학금이 전공 공부를 수월히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고 했다. 장학금을 받기 전에는 카메라나 파이널컷, 어도비 등 영상 편집·제작·보정 등을 위해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구입해서 쓰기가 어려웠다. 늘 학과 사무실을 들러 필요한 것을 빌리거나 알바(아르바이트)로 일하며 돈을 모아 저렴한 도구를 사 써야했다고 한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유랑 씨는 장학금을 받자마자 부모님 가게에 음료 냉장고부터 새 것으로 바꿔 주려 한 ‘효녀’다. 부모님은 ‘네가 직접 지원해 받은 장학금인 만큼 자신이 필요한 곳에 요긴하게 쓰라’는 뜻을 내비쳐 영상 장비들을 사는 데 썼다. 유랑 씨는 “장비가 비싸다 보니 집에다가는 선뜻 사달라고 할 엄두도 못 냈는데 장학금을 받은 덕에 필요한 도구들을 구매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는 학과 사무실을 전전하며 장비를 빌리지 않아도 돼 전공 공부하는 데 더 시간을 쏟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이수정 씨(고등학교 1학년)도 우아한 사장님 자녀 장학생이 됐다.
낡은 주택가 옥탑방은 수정 씨의 작은 무대다. 학교가 마치면 곧장 집으로 와 노래 연습을 한다. 수정 씨 어머니에 따르면 해 질 녘 주택가 골목은 수정 씨의 꾀꼬리 같은 노랫소리로 가득 메워진다.
비싼 뮤지컬 공연을 자주 볼 엄두는 안나 겨우 한 번씩 저렴한 3층석에서 공연을 보며 뮤지컬 배우에 대한 꿈을 키웠다. 장학금을 받고 가장 많은 비용을 쓴 곳이 뮤지컬 1층 앞좌석 관람이다. 수정 씨는 “앞좌석에서 공연을 제대로 관람을 하니 진로에 확실히 도움이 됐다”며 “뮤지컬 ‘레베카’의 주인공 ‘나’나 ‘지킬앤하이드’의 ‘엠마’ 같은 역할을 해보는 게 꿈”이라고 전했다.
장학금을 받고 보니 친구들과 밖에서 놀 때 ‘배부른 척’하지 않아도 되는 점도 좋다. 늘 용돈이 부족해 친구들과 만나도 밥 값을 아끼려 그 좋아하던 떡볶이도 마다한 적이 많다. 그래도 부모님에게 용돈을 더 달라 떼쓴 적은 없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매일 밤 늦은 시간까지 작은 홍게집에서 장사를 하는 부모님께 부담을 주기는 싫었다. 친구들에게는 공부를 하러 집에 빨리 가겠다거나 배가 고프지 않다는 핑계를 댔다.
수정 씨는 “장학금을 받자마자 잘 지내던 친구에게 한턱 쐈다”고 자랑했다. 평소 수정 씨의 ‘순댓국 데이트’ 상대인 외할아버지도 한턱 대접 받았다. 수정 씨는 “순댓국을 먹고 싶어 하면 항상 외할아버지가 사주셨는데 최근엔 제가 돈을 냈다”며 “장래희망을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놀기도 하며 장학금을 유용하게 써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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