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랄하고 현란한 현대미술 작품을 내걸던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연말이 되면 잔잔한 느낌의 전시를 마련한다. 따스한 작품을 바라보며 지난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이할 용기를 얻어 가라는 뜻에서다.
서울 회현동 금산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단체전 ‘천천히 걷기’도 그런 전시다. 서울대 동양화과를 거쳐 갔거나 재학 중인 젊은 동양화가 6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모두 현대 사회의 일상을 다룬다. 김나현 작가는 모호한 형상을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김다운 작가는 일상의 사물을 통해 ‘오늘’의 소중함을 표현한 작품(사진)을 내놨다.
박현욱 작가는 창문과 그 너머의 실내 장소들을 그렸고, 성소민 작가는 조각도를 이용해 여행지의 풍경을 목판에 새겼다. 먹에 소금을 더해 우연한 효과를 활용한 이계진의 ‘소금산수’, 아크릴 물감과 호분으로 목련을 흑백사진처럼 그린 ‘매그놀리아(Magnolia)’ 연작도 주목할 만하다.
황달성 금산갤러리 대표는 “천천히 전시장을 거닐며 한 해를 되돌아보고 그림에서 따스한 위안을 얻기 바란다”고 말했다.
청담동 갤러리서림에서 오는 27일 개막하는 ‘시가 있는 그림’도 차분한 느낌의 전시다. 지난 10월 작고한 원로 문인 김남조 시인을 추모하는 자리로, 평소에 김 시인의 시를 사랑하고 교류했던 화가들이 준비했다. 원로 작가 황영성과 스테인드글라스 작가로 이름난 조광호 신부, 화가 겸 작가 황주리 등 고인의 팔순 시화전과 88세 미수기념전에 참여했던 작가 12명의 작품 20여 점이 나왔다. 교과서에 수록된 김 시인의 시 ‘겨울바다’를 모티브로 한 노태웅 작가의 작품이 눈에 띈다.
김성옥 갤러리서림 대표는 “김 시인은 생전 시가 있는 그림 전시에 많은 관심을 갖고 화가들을 격려해 주셨다”며 “함께 했던 화가 12명과 함께 팔순 시화전에 나왔던 서세옥·민경갑 작가의 작품 두 점을 함께 전시한다”고 전했다. 금산갤러리와 갤러리서림의 전시는 모두 다음달 11일까지 열린다.
<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겨울 바다> - 김남조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