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0일 정부의 물가 관리에 대해 "공짜는 없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날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간담회에서 '품목별 담당자를 지정하고, 업계와의 간담회를 늘린 정부의 물가 관리 정책의 효과'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물가 둔화 늦어질수도"
올들어 정부는 빵과 우유 등 가공식품 물가를 전담하는 공무원을 지정하는 등 물가 관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식품업계와의 간담회도 수차례 진행했고, 최근에는 주류업체에 출고가격을 올리지 않을 것을 요구했다는 지적도 나왔다.이 총재는 "(정부의 물가 관리로) 물가가 안 올라갔고, 기대 수준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다"면서도 "세상에 공짜가 없는 것처럼 관리를 했기 때문에 되돌리는 과정에서 물가가 떨어지는 속도가 더 늦춰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가 직접적인 조정 권한이 있는 공공요금 분야에서도 이런 흐름이 나타났다. 지난해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을 충분히 올리지 않으면서 물가 고점은 낮아졌지만, 올해 요금 인상이 이어지면서 물가 둔화 속도를 더디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총재는 현재 물가 상황에 대해 목표치(2%)까지 '마지막 한걸음(라스트 마일)'이 남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올해 물가 둔화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지만 라스트마일은 지금까지보다 쉽지 않다"며 "미국 중앙은행(Fed)과 유럽 중앙은행도 이를 반영해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기자간담회는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를 내놓은 후 진행됐다. 이 보고서는 정기적으로 한은이 물가 상황을 살펴 그 결과를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작성한다. 해마다 6월과 12월 두 차례 발간되고 한은 총재가 직접 기자간담회를 통해 내용을 설명한다.
한은은 보고서를 통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2월 중 전월(3.3%)과 비슷하거나 소폭 낮아진 뒤 추세적으로 둔화하며 내년 연말로 갈수록 2% 부근에 근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가의 상방 위험 요인으로는 국제유가 재상승과 기상이변에 따른 국제 식량 가격 인상, 비용압력의 파급영향 등이 꼽혔다. 비(非)OPEC(석유수출국기구)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의 추가 감산과 지정학적 정세 불안 등으로 유가가 다시 오르거나 기상 악화로 일부 농산물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물가 상승률 둔화 흐름이 더디게 진행될 수 있다는 게 한은 분석이다.
아울러 한은은 보고서에서 "정부 정책 측면에서 전기·도시가스 요금의 점진적 인상, 유류세 인하 폭 축소 등도 내년 물가 둔화 흐름을 다소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미 금리인하, 본격적으로 시사한 것은 아닐수도"
최근 제롬 파월 Fed 의장의 '금리 인하 논의' 발언 이후 시장에서 미국의 조기 금리인하 기대가 커지는 것에 대해선 '과도하다'고 봤다. 이 총재는 "파월 의장의 발언은 금리 인하를 본격적으로 시사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게 개인적 생각"이라며 "현 수준을 유지하면서 오래 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다만 이 총재는 "Fed가 내년 중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커진 것은 사실"이라며 "미국이 더 이상 금리를 확실히 올리는 것은 아니라는 기대 때문에 국제 금융시장이 안정됐고, (우리나라도) 환율과 자본이동 등의 (통화정책 결정의) 제약 조건이 풀려 국내 요인을 봐가며 통화정책을 펼 수 있게 됐다"고 긍정적 평가도 덧붙였다.
내년 경제는 정보기술(IT) 분야에 편중된 성장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총재는 "IT부문을 제외하면 내년 성장률은 1.7%"라며 "분야마다 느끼는 성장의 정도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정 분야를 타깃으로 하는 부양책이 필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한은은 내년 국가 전체의 성장률을 2.1%로 제시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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