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찬반토론] 고위험 성범죄자 거주제한 '한국형 제시카법' 타당한가

입력 2023-12-25 10:00   수정 2023-12-26 15:50


고위험 성폭력 범죄자의 거주지를 제한하는 법 제정이 추진 중이다. 이른바 ‘한국형 제시카법’이다. 미국의 제시카법은 2005년 플로리다주에서 성범죄자에게 강간 살해된 피해자 제시카 런스퍼드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 법은 12세 미만 아동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를 경우 최저 징역 25년에 처하고, 출소 후에도 평생 위치추적장치를 부착하도록 해 학교나 공원에서 일정 거리 안에 거주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최악의 범죄자에 대한 사회적 격리형이다. 하지만 수형 생활로 징벌을 받은 자에 대한 이중 처벌인 데다 헌법이 보장하는 거주이전의 자유를 뺏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지적이 있다. 지정 지역 주민들의 반발 문제도 있다. 그런데도 흉포해지는 성범죄자를 그냥 둘 수 없다는 여론이 높다. 한국형 제시카법을 제정해야 하나.
[찬성] 잔혹 성범죄자 격리·관리 필요, 7명 중 1명 재범…불안 해소해야
아동을 상대로 잔혹한 성폭력을 휘두른 범죄자들은 따로 격리할 필요가 있다. 성범죄자들이 범행을 되풀이한다는 통계도 있다. 모든 성 관련 전과범이 아니라 고위험 성폭력자를 대상으로 격리하는 것이다.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성범죄로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았거나 세 차례 이상 성범죄를 저지른 자 등이 대상이다. 이 법안을 준비한 법무부에 따르면 거주제한 검토가 필요한 성폭력 범죄자는 2022년 말 기준 325명 정도다. 법무부에서 고위험자를 가리고 법원 판정을 받아 제한 대상자를 정하면 인권침해 논란도 줄어들 수 있다. 미리 법을 제정해야 2025년 말까지 출소하는 187명에 대한 격리 준비를 할 수 있다.

법무부가 이 법안을 마련해 국회로 보낸 이유는 아동 및 청소년 성범죄 피해자의 26%가 13세 미만이라는 현실 때문이다. 성범죄자의 재범률도 13%에 달한다. 성범죄가 출소한 뒤 임의로 거주지를 택하면서 국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하는 경우도 있고, 주거지가 일정하지 않아 재발의 사각지대도 커지고 있다. 경찰이 신고를 받고 출동했으나 혐의자가 사전 신고된 거주지와 다른 곳에 살고 있어 범행을 막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정부가 정한 기준에 부합하는 성범죄 관련 전과자는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곳 가운데 법무부 장관이 지정하는 장소로 거주가 제한된다. 이들의 성 충동을 자제하게 하는 약물치료를 의무화하는 내용도 법안에 담겨 함께 추진되고 있다.

잔혹한 성범죄를 예방하는 것은 국가의 중대 책무다. 국민의 안전과 불안 해소를 위해 중범죄자에 대한 체계적 관리·감독이 꼭 필요하다. 약물치료를 받은 성범죄자 재범률은 1.3%로 그렇지 않은 경우(10%)보다 월등히 낮다는 점도 국가의 적극적 대처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거주 장소 제한뿐 아니라 아동, 청소년 통학 시간과 야간통행 제한, 어린이보호구역 출입 금지 같은 조치도 함께 시행해야 효과가 난다.
[반대] 재수감 수준 이중 처벌 위헌 소지…범죄자 거주 지역 낙인효과 우려도
‘한국형 제시카법’의 초안대로라면 한 번 처벌받은 범죄인이 재수감 수준의 이중 처벌을 받게 된다. 범죄의 과학적 예방은 정부 스스로 확보해야 할 치안의 기본 역량 문제다. 기본권을 묶어 범죄 재발을 막겠다면 살인, 폭력, 강도 같은 강력범죄자도 모두 거주를 제한할 것인가.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제14조)고 돼 있다. 범죄 경력자도 예외가 아니다. 법에 규정된 처벌을 받고 형이 만료된 전과자를 특정 시설에 살도록 강제하면 위헌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시설 지정도 말처럼 쉽지 않다. 당초 정부는 ‘학교 등에서 600m 이내 거주 금지’ 같은 거리 제한을 검토했으나, 인구가 덜 밀접한 비수도권 지역으로 거주지가 집중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방향을 바꿨다. 그런데도 정부가 지정하는 ‘국가 등이 운영하는 시설’은 인구가 밀집하지 않은 지역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해당 지정 지역 주민들의 불만·불안이 커지며 불필요한 지역 간 갈등이 생긴다. 안 그래도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커지는 것이 심각한 국가적 문제인데, 지역 간 ‘치안 격차’까지 생긴다면 그 결과는 누가 책임지나. 또 범죄자들이 몰려서 거주하는 지역의 슬럼화도 우려된다. 국가 편의로, 또 다수가 희망한다고 범죄자들을 한군데 몰아두면 관리·감시하는 정부는 편할지 모르지만, 지역 간 격차 심화라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실효성도 따져봐야 한다. 국토가 좁아 외진 산골과 무인도가 아니면 이들을 격리할 곳이 없다. 거주제한이 영구적일 수도 없기 때문에 학교가 특정 지역에서의 범행 발생 확률을 일시적으로 떨어뜨리는 정도에 그칠 수 있다. 법원이 판정하는 제한 기간이 지나면 이들은 다시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강압적 격리자는 노숙자나 폐인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특정 소수의 기본권만 침해할 뿐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다.
√ 생각하기 - 취지 공감하지만, 다양한 문제점 극복할 보완책 필요
아동 성범죄자 등을 상대로 범행 기회와 의지를 빼앗아 범죄를 예방하고 발생률을 낮추겠다는 정부의 의도는 좋다. 재범률 등을 생각하면 고위험 범죄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것이 현실적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명분이라도 기본권 침해에 따른 위헌 논란, 다수의 요구에 의한 과잉의 소수 억압에는 문제도 있다. 합법적 절차를 거친 교도소·화장터 같은 시설도 집단 반대로 기피하는 현실에서 지정 지역의 낙인효과와 그에 따른 격차도 극복 과제다. 거주제한 가능 지역이 외진 산골이나 무인도뿐이라면 재수감 수준의 이중 처벌이라는 점도 문제다. 예상되는 문제점을 미리 충분히 살피고 보완 조치를 만드는 등 시행의 세부 각론에서 다듬어야 할 게 많다. AI 기반의 보안용 CCTV 확대, 과학적 순찰 확대, 신속 출동 등으로 경찰이 치안 사각지대를 최대한 없애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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