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은 여성의 공간이었다. 스페인 궁정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1618)는 부엌 그림의 정수를 보여준다. 신약 성서에 등장하는 마르다·마리아 자매의 일화를 그렸다.
예수가 집에 들자 언니 마르다는 식사를 준비했고, 동생 마리아는 예수의 말씀을 들었다. 벨라스케스의 그림은 부엌에 있는 언니 마르다의 뾰로통한 표정에 시선을 집중시킨다. 저자는 “마르다와 마리아가 배움과 부엌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것은 결국 두 사람 다 여성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책은 그림 속 여성들이 사회적 공간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살펴본다. 거리에 나선 여성들은 유혹과 위험에 직면했다. 에두아르 마네의 ‘폴리베르제르 술집의 바’(1882) 속 여성 종업원 뒤편 거울에는 추근대는 남성 손님이 비춰 보인다. 파스텔톤 색감이 인상적인 에드가르 드가의 ‘발레, 스타’(1878)의 커튼 뒤에는 발레리나를 음흉하게 지켜보는 중년 신사가 숨어 있다.
책이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작품은 정정엽의 ‘먼 길’(2020)이다. 과거 여성들이 비좁은 복도에 갇혀 있던 것과 달리, 여기서 여성은 드디어 탁 트인 바다와 육지 사이에 서 있다. ‘먼 길’을 걸어 자유로운 바다에 도착했다는 의미일까. 작품은 여러 생각을 남긴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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