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계를 위한 경찰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 한마디에 동맹에 대한 미국의 속내가 담겨 있다. 당파를 초월해 많은 미 국민이 트럼프가 제기한 동맹의 무임승차를 문제로 느끼는 게 현실이다. “이익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동맹이 존재하기는 어렵다”는 국제 정치학의 대가 마틴 와이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냉혹할 정도로 이익을 계산하는 것은 국제정치는 물론 동맹관계의 본능이다.
북한을 비롯해 중국 러시아와 인접한 한국에 한·미 동맹 관계 변화는 생존과 직결된 사안이다. 한국을 보는 미국의 달라진 시선을 이해해야 하는 당위론이다.
저자는 “도대체 우리가 왜 한국을 지켜줘야 하느냐”는 미국의 질문을 끌어들인다. 그러면서 세상이 한국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소위 ‘한반도 천동설’에 빠진 우리의 동맹관을 상기시킨다. 우리 외교 전략은 줄곧 세계가 북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촉구하면서 상대가 원하는 반대급부에 대해선 일말의 고민조차 없었다고 일갈한다. 부담은 최소로 지면서 혜택은 최대한 받겠다는 심보가 한반도 천동설을 키웠다는 것이다.
지금껏 미국은 이런 행동을 알면서 눈감아줬지만 한국 경제 규모가 세계 10번째로 커지고 중국이 미국의 최대 위협으로 부상하면서 셈법이 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몸집이 커진 한국에 합당한 책임과 역할을 능동적으로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 한반도 천동설에 입각한 전략을 세우다가는 큰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한국은 스스로 변해야 한다. 더 이상 약한 국가인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존 햄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소장의 고언은 시사적이다.
미국 정부 산하 방송국 펜타곤 출입 기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800편 넘는 취재 기사, 200명 넘는 전현직 관리 인터뷰, 미국 정부와 싱크탱크의 각종 보고서 및 극비 문서 등을 통해 달라진 미국의 본심이 무엇인지 파헤친다. 이 책을 관통하며 “한반도는 미국 동북아시아 안보 전략의 중심일까” “한국의 핵무장은 가능할까” “주한 미군은 철수할까” 등 한반도의 안보와 운명을 좌우할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답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한반도 중심 안보 논리를 미국 중심으로 뒤집어 보여줌으로써 그동안 우리가 믿어온 통념과 오해를 깨고 외교 안보의 현실을 직시하도록 일깨운다.
올해는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는 해다.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시작된 동맹은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이루는 중요한 원동력이자 대북 억지력을 제공하고 전쟁이 발발하는 것을 막는 방패 역할을 해왔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 경제 대국으로 성장해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 한·미 동맹은 역사적으로도 가장 성공적인 동맹 사례로 평가받는다. 이런 한·미 동맹이 급변하는 국제정세 변화와 맞물려 변곡점에 섰다. 북한은 핵 능력을 갈수록 고도화하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은 ‘신냉전’ 양상을 띠며 국방, 외교는 물론 경제, 기술 등 전방으로 확산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은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무엇보다 한반도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 변화가 우려스럽다. 미국은 ‘2022 국방 전략서’에서 기존처럼 중국과 러시아를 최우선 위협으로 명시한 반면 기존 2순위 위협이던 북한과 이란을 3순위 위협인 테러 단체와 뭉뚱그려 ‘기타 위협’으로 재분류했다. 심지어 북핵 위협은 펜타곤에서 뒷전으로 밀려나 무관심한 문제 취급을 받는다는 평가도 나온다.
내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한국에 더 큰 비용과 군사적 책임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2021년 타결된 한·미 방위비 분담특별협정(SMA)은 2025년 말 만료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집권 시 한국을 패싱한 채 북한의 핵 동결과 제재 완화를 맞교환하는 구상을 추진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오늘날 미국이 지향하는 세계 전략안에서 ‘혈맹’이라는 레토릭만으로 우리를 방어할 수는 없다. 우리가 지난 70년간 믿어온 안보 논리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냉엄한 현실이다. 이런 변화에 대응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선택해야 할까. 이 책의 일독을 권하는 이유다.
유병연 논설위원 yoob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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