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꽤 잘나가는 타자들도 중요한 타석에서 자신에 대한 불신에 자주 지배된다고 한다. 9회 말 투아웃과 같은 절체절명의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상대의 구종이 어떨지 고심하고, 내심 투수의 실투도 기대해본다. 공이 날아오는 것을 보면서도 오만가지 생각에 몸이 굳는다. 포수 미트에 공이 박히고 주심의 힘찬 삼진 콜이 울려 퍼진 후에야 한심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중심 타선의 중압감은 그렇게 크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직을 수락하면서 현 상황을 야구에 빗대 주목받았다. “9회 말 투아웃 투스트라이크면 원하는 공이 들어오지 않았어도, 스트라이크인지 애매해도 후회 없이 휘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금 국민의힘은 꽤 큰 점수 차로 리드를 빼앗긴 상황이다. 안 그래도 팀은 연패로 패배 의식에 절어 있고, 선수단의 내홍에 팬들마저 등을 돌렸다.
이런 상황에 한 전 장관이 나서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실제 시합에선 이렇게 등장했다가 영웅이 아니라 원흉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 총선 때도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와 몇몇 중진이 역전 타자를 자처했지만, 상대의 실책이나 요행을 바라는 소극적 플레이를 펼치다가 범타로 물러났다. 국민의 마음을 울리는 한방은 자신의 모든 것을 실은 우직한 풀스윙에서 만들어진다. 타석에 선 한동훈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고경봉 논설위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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