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분의 책을 읽었는데 이런 말이 있었다. “박사과정에 들어갔는데 놀랍게도 한국인 두 명 외에는 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다들 대학에서 문학, 정치, 경제 등을 전공했다.”
그는 매우 우쭐했다고 한다. 이미 4년간 인류학을 열심히 공부했기에 인류학자들의 기존 이론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박사과정은 매우 쉬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자신 있게 보고서를 냈다. 그런데 보고서에 남긴 교수님의 코멘트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잘 요약했군요. 당신의 의견은 뭡니까?(Great summary! What’s your opinion?)”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학생들과 공부하던 중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자신은 학자들의 이론을 다 알고 있음에도 인류학 테두리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지만, 다른 학생들은 인류학 이슈를 자신이 전공한 분야와 연결해 다양하게 해석하고 창의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철학, 문학, 경제학 등의 시각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기발한 발상을 한 것이다.
그는 “완벽한 내부인은 기존 환경에 완전히 적응해서 문제 파악이나 새로운 발상이 어렵다. 그렇다고 완전한 외부인의 훈수는 상황을 너무 모르기에 말이 안 되는 아이디어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그러면 누가 큰 도움이 될까? “외부인이 그 분야에 뛰어드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내부의 시선도 이해하면서 주변인의 정체성을 더할 수 있기에 창의성과 혁신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경계를 오가는 연결자”가 창의와 혁신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판소리를 대중적으로 재해석해 화제를 일으킨 이날치 밴드도 이런 말을 했다.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다른 장르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냈는데 그 영향이 아닐까요. 연극, 무용, 영화, 미술 등 다른 장르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확장성을 갖게 됐습니다. 익숙한 경험, 자기만의 장르에 갇혀 있으면 금세 낡아버립니다. 의도적으로라도 다른 장르의 공간, 사람, 분위기에 자신을 자주 노출하세요. 저는 다행히 특이하고 대담한 취향의 사람들과 섞여 지냈고, 그때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퍼포먼스가 큰 자산이 됐습니다.” 그도 경계를 오가는 연결자 역할을 통해 지루하고 전통적인 기존의 판소리를 혁신했다.
가끔 대학생, 직장인들과 이야기해 보면 커리어에서 전공을 변화시켜 보거나 다른 커리어 영역으로 가는 것을 매우 두려워한다. 오히려 소위 일류대 출신일수록 더 그런 경향이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 경쟁 중심 교육의 영향으로 항상 등수에 대한 예민함이 내재화해 있는 것 같다. 다른 영역으로 옮겼을 때 실패하거나 지금 가지고 있는 위치와 인정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이 큰 것이다.
당신이 경영자라면 외부인을 적절히 섞이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외부인이 외부에서 쌓은 역량을 현 조직과 연결해 새롭고 기발한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기존 인력들을 자극하고 조직 전체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물론, 타이거 우즈처럼 어렸을 때부터 하나만 파서 최고에 오른 사람이 있다. 그러나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이라는 책에서는 ‘타이거 우즈 모델’보다는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 모델’을 제시한다. 페더러는 어렸을 때부터 경계를 넘어 다양한 운동을 하며 자랐다. 늦은 나이에서야 테니스를 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다양한 경험이 유연하고 창의적으로 테니스를 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저자는 정해진 규칙이나 불변의 환경에서는 우즈 모델이 적합하지만 변하는 규칙, 변하는 환경에서는 페더러 모델이 더욱 적합함을 역설한다. 지속적으로 변하며 불확실성이 높은 현실 세계에서는 한 경계 속에 있는 것보다 다양한 경계를 오가는 사람이 새로운 문제에 더 빠르게 대응하며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것은 기존에 쌓아온 것을 버린다는 의미가 아니다. 스티브 잡스가 강조한 ‘점 잇기(connecting the dots)’처럼 기존의 것이 융합되면서 그것만 계속해온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창의적이고 새로운 가치를 제시할 수 있다. 또한 기존 조직에 자극이 돼 모두가 ‘윈윈’하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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