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뜨거운 '워크 바이러스' 논쟁

입력 2023-12-24 17:35   수정 2023-12-25 00:11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친구가 울분을 터트리더군요. 딸이 학교에 다녀오더니 ‘조지 워싱턴은 건국의 아버지가 아니라 그냥 노예 소유주에 불과하다’고 했답니다. 요즘 학교가 ‘정치적 올바름’이니 하면서 이런 걸 가르칩니다.”

얼마 전 한 방송에서 이렇게 세태를 한탄한 주인공은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다. 그가 요즘 자주 쓰는 대표적인 표현이 ‘워크(woke) 바이러스’다. 워크는 ‘정치적 올바름(PC)’을 추구하고 인종, 성 정체성, 문화 등의 다양성을 지지하는 이른바 ‘깨어 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 깨시민주의가 공격적으로 변질하고 바이러스처럼 증식하면서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머스크는 이런 워크 바이러스를 막는 방역 전사를 자처하고 있다. 워크주의에 적극적인 기업인 디즈니와 전면전을 벌이는 게 대표적이다. 디즈니가 머스크가 최대주주인 SNS 엑스(X)의 광고를 중단하자, 테슬라는 자사 전기차의 디즈니플러스 앱을 삭제했다.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수백 명의 흑인 노예를 두고 있었다는 점을 들어 교육 현장에서 벌어진 ‘국부(國父) 논란’에도 참전했다. 시대적 맥락을 외면한 채 업적을 폄훼한다고 일갈한 것이다.

반(反)워크주의 소신은 그의 비즈니스에도 반영된다. 챗GPT 등 인공지능(AI) 챗봇들이 편향된 답변을 내놓는다고 비판해온 머스크는 반워크 성향을 자신한 챗봇 ‘그록’을 선보였다. 하지만 그록마저 워크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평가를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학습 정보에 스며든 PC주의의 그림자를 못 벗어났다는 평가다.

워크주의 논쟁은 한국에서도 뜨겁다. 페미니즘, 환경운동, 동물보호 등 다양성을 옹호하고 약자를 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다. 문제는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또 다른 혐오를 부추기는 사례까지 같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대뜸 고깃집에 들어와 “당신들은 살육을 저지르고 있다”며 고함지르는 채식주의자들, 지하철 문을 가로막는 시민운동가들, 미술품에 페인트를 뿌리는 환경주의자들이 그렇다. 이쯤 되면 다양화에 대한 옹호가 아니라 획일화를 위한 폭력이다.

고경봉 논설위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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